큐티/요한복음

왜 사도 요한이 먼저 알아보았을까?

운석57 2025. 3. 14. 10:06

2025.03.14(금) 큐티: 요한복음 21:1-14

 

<묵상하기>

 

*왜 사도 요한이 먼저 알아보았을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두 번 만난 후, 어느 날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
앞에서 말했다.

"나는 물고기를 
잡으로 가노라"

생업으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이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두 번이나 만났지만,
베드로의 영적 혼란은
여전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자신의 사명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자,
생계라는 현실이
그를 사로잡았다.

베드로의 말에 도마, 
나다나엘, 요한,
야고보, 그리고 
다른 제자 두 명이
동참하였다.

제자들 사이에 
베드로의 리더십 
또한 여전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들 일곱 
사람은 고기를 잡기
위해 배에 올랐다.

그런데 밤새도록
배를 탔지만,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피곤하고 암울한
밤이었다.

그들의 영혼과
같은 밤이었다.

날이 새어가는
어스름한 무렵,
예수님이 바닷가에
오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분이 예수님인 줄
알지 못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두 번이나 만났는데,
왜 그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

아직 날이 밝지 않아
어두웠기 때문일 수
있다.

진리를 인식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제자들의
영혼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다.

다른 한편,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은 
일반적인 물리적 
특성을 초월한 
것일 수도 있다. 

즉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상황에 따라 
변모하실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여하튼 제자들은 
단 번에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고기가 
있는냐?"

제자들은 예수님이신 
줄도 모르고 대답했다.

"없나이다"

예수님을 물고기를
사러 온 고객으로
여긴 것일까?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이는 베드로가 
제자로 부르심을 
받을 때의 일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그 때처럼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던졌다.

그리고 물고기가
그물 가득 잡혀서
그물을 들 수 없었다.

그제서야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사도 요한이 "주님이시라!"
말하니 베드로가 급히
겉옷을 입고 바다로
뛰어 내렸다.

배를 정박시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헤엄쳐서 가기 위해
바다로 뛰어 내린 
것이다.

그러나 그 급한 
순간에도 예수님께 
예를 갖추기 위해 
겉옷을 입었다.

왜 사도 요한이 가장
먼저 예수님을 알아
보았을까?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왜 사도 요한을
사랑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오늘 본문을 보니
그것이 분명해졌다.

그는 영적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성격이 우락부락하고
우뢰와 같은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영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러한 영적
민감함으로 예수님을
먼저 알아본 것이다.

그가 영적인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은 그가 기록한
요한복음만 봐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사도 요한의
그러한 영적 통찰력을
사랑하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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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 올라보니
예수님은 숯불에
생선과 떡을 굽고
계셨다.

아침을 조리하고
계셨다.

예수님은 그들이 잡은
생선을 더 가져오라
말씀하셨다.

밤새 헛고생하느라 
피곤하고 시장한 
그들을 풍족하게
먹이시기 원하셨던
것이다.

베드로가 그물을
육지로 끌어 올리니
큰 물고기만 153 마리가
잡혀 있었다.

그럼에도 그물은
찢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물고기의 수는
숫자에 능한 빌립이
세었을 것이다.

그리고 빌립도 
그 자리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사도 요한은 물고기의
숫자를 구체적으로
밝힘으로써 실지로 
일어난 사실을 자신이 
기록하였음을 
나타내었다.

예수님은 구운 떡과
생선을 제자들에게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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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수님은 부활 후,
세 번째 만남에서
제자들과 아침 식사를
나누셨을까?

십자가의 달리시기 전,
제자들과의 마지막은
최후의 만찬으로
종결하셨다.

그리고 부활 후,
제자들과 아침
식사를 나누심으로써
새로운 사역, 새로운
시작을 알리신 것이다.

최후의 만찬은 
성찬을 통한 
예수님과의
교제를 의미한다.

그리고 제자들과
나누신 아침 식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예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의미한다. 

그리고 제자들과
아침 식사를 
나누심으로써
예수님이 실지로
부활하셨음을
확실히 알려주는
기회로 삼으셨다.

 

 

<기도하기>

 

주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도,
생계 앞에 굴복하였습니다.

저희도 매일 주님을
경외하는 대신, 생계를
경외합니다.

생계가 모든 것을
변호한다고
여깁니다.

물고기를 잡으러
가지 말고, 나의 
영혼을 붙잡으러
가게 하소서.

영적인 혼란에서
벗어나, 저희 삶에
오신 예수님을
분명하게 바라보게
하소서.

매일 아침 식사를
먹듯이, 예수님과의
교제가 저희의 일상이
되게 하소서.

아멘!

 

* 두란노 출판사 발행 생명의 삶 본문 묵상을 올리는 블로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