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03(월) 큐티: 사도행전 7:1-16
<묵상하기>
*스데반의 변증의 시작*
대제사장이 스데반에게
유대교 지도자들이 고소한
내용이 사실인가를 물었다.
즉 스데반이 성전과
율법을 모독함으로써,
하나님을 모독한 죄를
저지른 것이 맞는가를
물은 것이다.
그런데 스데반은
자신이 고소당한
것을 변호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세워진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변증할
절호의 기회라 여겼다.
그래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변증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스데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변증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구약
성경이었다.
스데반은 구약 성서의
내용을 요약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변증하고자 하였다.
타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그것도 초신자가
유대교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 앞에서 구약
성서로 설교를 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세상 눈으로 보면
무모하다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성령과
은혜와 지혜로
충만한 사람이었다.
유대인들은 약속된
가나안 땅,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
그리고 다윗이
준비하고 솔로몬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인해 자신들이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백성이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즉 땅, 율법, 그리고
성전으로 인해 자신들이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특별한 민족이 되는
것으로 여기고, 이에
집착하였다.
특히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만 임재하시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율법과
성전을 모독하는 것을
신성모독으로 여겨
엄중하게 처벌하였다.
스데반은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언약은
땅과 율법과 성전에
있는 것이 아님을
변증하기 시작하였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
진정한 하나님 언약의
성취 임을 변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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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의 변증의
시작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한 것은
아브라함의 의지나
계획이 전혀 아니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은 다만 말씀에
순종하였을 뿐이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이주했으나 그는
발 붙일 만한 땅도
얻지 못했다.
가족이 묻힐 막벨라
동굴을 얻은 것이
전부였다.
아브라함은 아직
자식이 없음에도,
하나님이 언약하신
그 땅을 후손에게
주실 것을 굳게 믿었다.
그러나 그 후손들
또한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어,
400년 동안이나
고난을 받게 된다는
말씀 만을 듣고 죽었다.
즉 아브라함이 땅을
약속받았으나, 하나님의
언약은 땅에 있는 것이
아님을 변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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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스데반은
요셉을 내세웠다.
요셉은 형제의 시기와
질투로 애굽에 팔렸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은
가나안 땅에 있는
야곱의 자손들을
애굽으로 옮기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며
장치였다.
야곱과 그 자식들은
약속받은 땅, 가나안이
아니라 애굽에서 죽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애굽으로 이주하는
야곱 및 그 자손들과
함께 하셨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다고 가나안
땅에만 임재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기도하기>
주님.
어느 것도 스데반의
변증을 멈출 수 없습니다.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스데반을 멈추게
하지 못합니다.
스데반의 믿음은
머리로만 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성난 군중을
개의치 않고,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른 죽음은
헛되지 않았으며, 결코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변증이라는 값진
유산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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