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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마가복음

끼니 걱정

by 운석57 2024. 1. 22.

2024.01.22(월) 큐티: 마가복음 8:14-26

 

<묵상하기>

 

*끼니 걱정*

막달라에서 표적을
요구하는 바리새인들을
뒤로 하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배를 타셨다.

예수님은 세상이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으로
인해 나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을
염려하셨다.

바리새인의 누룩은
율법주의, 형식주의의
병폐를 의미한다.

그러한 병폐로 인해 
바리새인들은 심각한
위선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위선은 유대인
사회 전체에 누룩처럼
번져 나갔다.

헤롯 일가는 
많은 뇌물을 주고
로마로부터 분봉왕의
자리를 얻었다.

그래서 본전을 뽑아야
하는 헤롯 일가는 
물질주의, 세속주의에
심각하게 물들어 있었다.

그것은 사두개인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님은 배 안에서 
제자들에게 그러한 
위선과 세속주의를 
경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데가볼리를 떠나올 때,
칠병이어 기적 후에
남은 떡을 챙겨오지
못한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다음 끼니가 
걱정이었던
것이다.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란
소설에 보면 
놀라운 장면이
나온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의 
침략에 대비하는 
군사들의 훈련에만
주력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

장군은 틈틈이 생선과 
시레기 나물을 
말리는 등 식량을 
위해서도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난리 통에 조정으로부터
군사들을 위한 보급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식량을 위해 
장군이 애쓴 이유는
지나간 끼니는 다가올 
끼니를 위해 무효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지나간 끼니를 아무리 
잘 채웠다 해도,
그것으로 다가올 
끼니를 대신할 수 없다.

사람은 때가 되면
또 먹어야 된다는
단순한 진실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제자들도 그러했다.

칠병이어의 기적에
배부르고 취했지만,
그것은 다가올 끼니를 

위해 무효했다.

그때 예수님이 누룩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니,
자신들이 떡을 챙기지
못한 것을 책망하시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수군거렸다.

아마도 떡을 챙기지
못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 가를 비난하며 
수군거렸을 것이다.

제자들이 무엇을
염려하는지를 아신
예수님은 너무도
안타까워하셨다.

영혼의 끼니를 
육신의 끼니로
대신할 수 없다.

매일 매일 채워도
갈급할 뿐이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으로 
채워야 한다.

영혼의 끼니는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완결되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아직
그것을 깨닫기에
마음이 둔하였다.

--------------------------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벳세다에서
내리셨다.

벳세대는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셨던 곳이다.

그럼에도 그 곳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은 
소돔과 고모라 보다
더 악한 성읍이라고
그들을 책망하셨다.

그러나 그러한 곳에도
의인은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의인을 남겨두신다.

예수님을 믿는 선한 
몇 사람이 맹인을
데리고 예수님께 왔다.

그리고 그에게 손을
대어 고쳐주시기를
간구하였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많은 시각장애인들을 
고쳐주셨다.

눈 먼 사람이 보게 되는 
것이 메시아가 오심을 
나타내는 징조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은
예수님께 직접 나아와
고쳐달라고 소리 질러
간구하였다.

그러나 벳세다의 
시각장애인은
그들과 달랐다.

우선 그는 고침을
받기 위해 스스로 
예수님께 나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간구하는 동안에도
그는 구하지 않았다.

은혜를 구하는데
매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아마도 자신이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반신반의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예수님 또한 그를
고치시는데 있어 
다른 시각장애인들과 
구별되는 모습을 보이셨다.

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가셔서 눈에 침을
뱉으셨다.

나음을 입는데 매우
소극적인 그 사람에게
매우 적극적으로
고치시는 모습을
보이신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셨다.

기적을 베푸실 때,
예수님은 이런 것을
질문하신 적이 없다.

그냥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거나,
"너의 병이 고침을
받았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에게는
무엇이 보이냐고
물으셨다.

그 사람의 시력은
단번에 회복되지
않았다.

우선 그는 바로 눈 앞에
있는 예수님을 보지
못했다.

또한 사람과 나무도
구별하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시 안수하시니,
그는 모든 것을
밝히 보게 되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몇 번이고 기적을
다시 일으키신다.

또한 우리를
고치시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
안수하신다.

벳새다 시각장애인의
기적은 예수님이 마음이 
둔한 제자들에게 주시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들의 마음이
둔하여 예수님을
온전히 보지 못하고,
사람과 나무도 구별하지
못하나, 이후에는 모든
것을 밝히 보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신 것이다.

 

 

<기도하기>

 

주님.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이 저희
안에 계심에도,
매일 저희는 
세상의 끼니를
염려합니다.

광주리에 남은 떡에
연연하지 않게 하소서.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저희 끼니를 채워주소서.

아직 저희 영안은 
예수님을 온전히
보지 못하고 나무와
사람도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희 영안에
"에바다" 하고 말씀하셔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 두란노 출판사 발행 생명의 삶 본문 묵상을 올리는 블로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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