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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마가복음

말씀을 사모한 이방인들

by 운석57 2024. 1. 21.

2024.01.21(일) 큐티: 마가복음 8:1-13

 

<묵상하기>

 

*말씀을 사모한 이방인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두로와 시돈을 거쳐 
데가볼리 지역까지
약 250 킬로라는 
결코 짧지 않은 길을 
여행하셨다.

그런데 이 여행은 
전도가 목적이
아니었다.

휴식과 제자들에 
대한 교육이 여행의 
본래 목적이었다.

그러나 두로에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감탄하시며 놀라셨다.

그리고 데가볼리 지역
갈릴리 호수 근처에
오셨을 때, 큰 무리가
자신을 따르는 것을
보셨다.

즉 많은 이방인들이 
말씀을 사모하는 
것에 주목하셨다.

예수님은 유대의 
성읍, 고라신, 벳세다, 
가버나움 등지에서
말씀을 많이 전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성읍들에 화가
있을 것이라
꾸짖기도 하셨다.

그런데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셨던
이방 지역, 데가볼리
사람들이 말씀을 
사모하여 나아오자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기 시작했다.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이나, 말씀을
듣는 청중이나, 얼마나
말씀에 집중하였든지
사흘이 훌쩍 지나갔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음식이 떨어져 
가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씀에 집중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대견해 하시는 한편,
그들의 굶주림을
긍휼히 여기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오병이어를 체험하고도 
여전히 현실의 벽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적은 단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예수님은 몇 번이고 
기적을 일으키신다.

제자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를
물으셨다.

그리고 제자들이 
내놓은 떡 7 개와
생선 두어 마리를
축사하신 후, 나누어
주게 하셨다.

예수님의 축사로
성인 남자 사천 명을
비롯한 약 만 오천 명의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일곱 광주리의 떡이
남았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이
오병이어를 통해 유대인
구원, 그리고 칠병이어를
통해 이방인 구원의 
비밀을 열어 보이신 
것이다.

12와 7은 모두 
완전 수이다.

따라서 12 광주리로 
남은 유대인 구원이나, 
7 광주리로 남은 이방인 
구원이나 모두 완전한 
구원을 나타낸다.

중요한 것은 구원은
말씀을 사모할 때
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말씀을
사모하게 되며,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칠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후 예수님은
곧 그 자리를 떠나셨다.

사람들이 기적에
취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셨다.

달마누다는 막달라를
의미한다고 한다.

-------------------------

이방인 지역에서 
칠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고 돌아오신
예수님께 바리새인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였다.

예수님께 성령이 함께 
하시는 메시아이심을
드러내는 이적을
요구한 것이다.

그들의 요구에 
예수님은 깊이
탄식하셨다.

그런데 마태복음 
12: 29에는 예수님이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꾸짖으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을 믿지 않고,
이방 신을 섬기는
족속들처럼 표적을 
구하기 때문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부르신 것이다.

그리고 마태는 
예수님께서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대답하신 
것으로 기록하였다.

이 장면에 대해 
마가 보다 상세한 
기록을 남긴 것이다.

물론 요나의 표적과
예수님의 표적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요나는 3 일 동안
어두운 물고기
배에 있었다는 점과
예수님은 3 일 동안
어두운 무덤 속에 
계셨다는 점이다.

즉 요나와 예수님은 
3 일 동안 강함이
아니라 약함 가운데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공통점은
그것 뿐이다.

요나의 표적은
순종하지 않은
자의 약함이었고,
예수님의 표적은
순종한 분의 약함이다.

요나의 약함은 회개를
통해 어둠에서 
해방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약함은 
부활을 통해 세상을
이기셨다.

이처럼 예수님의 
표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요나의
표적을 왜 자신의 
표적에 대한 예시로 
주셨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한 요나의
반응이 실패였듯,
그리스도를 거부한 
사람들의 반응 또한 
실패임을 드러내신 
것이다.

 

 

<기도하기>

 

주님.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몇 번의 기적도 
마다 하지 않으십니다.

매일 저희에게 은혜를
베푸시듯, 기적 또한
베푸시나, 저희는 
눈이 어두워 깨닫지
못합니다.

일곱 광주리로 
남겨주셔도 알지
못하고 또 표적을
구합니다.

매일 매일의 삶이
저희에게 은혜이고
기적인 것을 알게 
하소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이 기적 임을
알게 하소서.

저희도 데가볼리의 
이방인들처럼 말씀을 
사모하게 하소서.

말씀을 사모하여 
예수님으로 하여금
시간이 가는 것을
잊어버리시게 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소서.

말씀을 사모하여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선물로
받는 사람들이
되게 하소서.

아멘!

 

* 두란노 출판사 발행 생명의 삶 본문 묵상을 올리는 블로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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