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28(일) 큐티: 마가복음 10:1-16
<묵상하기>
*창조의 시선으로 바라보라*
예수님은 가버나움을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강 동편으로
가셨다.
요단강 동편 베레아
지역은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가
통치하는 지역이었다.
그곳에서도 예수님은
전례대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때 군중 속에 섞여
있던 바리새인들이
이혼에 대해
질문하였다.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일부러 민감한 질문을
꺼내 든 것이다.
베레아 지역의
통치자인 헤롯
안티파스는 첫번째
아내를 버렸다.
그리고 동생 빌립을
죽이고, 그의 아내
헤로디아와
재혼하였다.
그 문제를 비판하던
세례 요한을
참수하였다.
이혼에 대한 질문을
함으로써 예수님도
세례 요한처럼 함정에
빠트리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혼은
헤롯 뿐 아니라,
율법과 관련해서도
민감한 문제였다.
예수님은 대답 대신
바리새인들에게
질문을 하셨다.
"모세의 율법에는
어떻게 명하였느냐?"
바리새인들은 이혼 증서를
써주면 이혼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에 그렇게 명한
것이라 말씀하셨다.
당시 여성들의 지위가
낮아서 아무 이유 없이
남편에 의해 버림을
받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러면 그 여성은
남은 생애를 매우
비참하게 살아야
했다.
남편들의 이러한
완악함을 막기 위해
율법은 이혼의 조건과
절차를 명시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 완악함 때문에
율법에 그러한 조문이
있는 것이라 말씀하신
것이다.
율법은 아내에게
수치스런 일이 발견된
경우, 이혼 증서를 써서
주고 이혼할 수 있도록
하였다 (신24: 1).
아내에게 생긴
수치스런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제시하지 않았으나,
성적으로 수치스런
일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혼 증서란
아내가 결혼 생활에서
정절을 지켰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서였다.
즉 율법은 이혼을 위해
이혼 사유를 명시하는
한편, 이혼 증서를
작성하게 하는 등
이혼 절차를 까다롭고
번거롭게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이유 없는 이혼을
막으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유대 남편들은
이혼 증서만 써주면
이혼을 허용하는
것으로 율법을
악용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결혼과 이혼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을
율법 조문이 아닌,
창조의 때로 향하도록
이끄셨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
둘이 한 몸을
이루도록 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하는
것이 결혼과 이혼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원칙 임을 강조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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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당시 어린아이들은
이혼한 여성만큼
사회적으로 약자에
속하였다.
그 아이들을 예수님은
따뜻하게 안아주셨다.
질병이나 귀신 들림과
같은 수 많은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왔다.
그런데 어떤 부모들이
자녀를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 안수하여
축복해주시기를 원했다.
예수님을 만나려고
대기하는 사람이
밀려서 복잡한데,
축복 받겠다고 아이들을
데리고 오니, 제자들로서는
짜증이 났다.
그래서 부모들을
꾸짖었다.
그 모습을 보고
예수님은 크게
노하셨다.
예수님이 화를
내시는 것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성전을 더럽힐 때나
성령을 훼방할 때
화를 내셨다.
아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금하는 일은
그만큼 심각한 일이라는
의미이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이며 소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아이와 같은 특성을
보여야만 하늘나라를
소유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아이들이 전적으로
부모를 의지하듯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아이들이 부모가
이끄는 대로 따라
가듯 하나님을
따라야 한다.
아이들이 세상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대하듯 그렇게
해야 한다.
아이들은 자신을
높이고자 애쓰지
않으며, 체면을
따지지 않듯,
믿는 사람도
그래야 한다.
<기도하기>
주님.
모든 것을 바라보는
저희의 시선을
하나님의 창조의
시선에 맞추게
하소서.
사람의 뜻과
욕심으로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왜곡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이 씌어주신
안경을 쓰고 남편과
아내를 바라보며
귀하게 여기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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