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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마가복음

소금의 짠 맛

by 운석57 2024. 1. 27.

2024.01.27(토) 큐티: 마가복음 9:38-50

 

<묵상하기>

 

*소금의 짠 맛*

오늘 본문 38절은
요한이 본래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내용이다.

어제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낮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섬기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말씀이
끝나자 마자 요한은
뜬금 없는 말을 했다.

우리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므로 
그것을 금하였다는
것이다.

요한이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기득권이다.

그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편 가르기를
한 것이다.

이 또한 요한이 권력욕이 
강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가 된다.

앞서 제자들은 
발작하는 소년의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었다.

그런데 제자도 아닌 
사람들이 귀신을 
쫓아냈다고 하니,
그 사실에 요한은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사도 바울도 이런 일을 
경험하였다 (빌 1:17-18).

그러나 사도 바울은
요한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연금 생활을 한다는
소문이 나자, 성도들의 
전도 활동이 급증하였다.

그 중 바울과 좋지 않은
관계였던 사람들은
바울을 괴롭게 하기
위해 더욱 전도에
힘썼다.

바울이 이에 대해
예수님의 이름만
전해질 수 있다면
족하다고 하였다.

그들이 어떤 이유로
전도를 하든 예수님의
이름만 전해진다면
자신은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

그렇게 기득권을
위해 편을 가르려는 
요한을 향해 예수님은 
간단하게 대답하셨다.

"금하지 말라!"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일을 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은
예수께 속한 사람이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고, 너그러움을
보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따라 사도 바울은
기회가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선행을
베풀되, 믿음의
가정들에 더욱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갈 6: 10).

-----------------------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데,
그 일을 금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실족하게 만드는
일이다.

만약 그 사람들이
아직 믿음이 어린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수 있다.

이렇게 믿음이 어린 
사람들을 실족케 하는
사람은 연자맷돌을
그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

그보다 더 큰 형벌을
받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연자맷돌은 나귀가
돌려야 하는 어마
어마하게 큰 맷돌을 
가리킨다.

믿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는
죄를 마땅히 심각하게
여겨야 한다.

손이 죄를 짓게 한다면
손을 찍어버리고,
발이 죄를 짓게 한다면
발을 찍어버리고,
눈이 죄를 짓게 한다면
눈을 빼어버린다.

이는 죄를 끊어내기
위해 눈과 수족을
실제로 끊어내라는 
의미는 아니다.

사람은 눈과 수족으로
죄를 짓게 되므로 
눈으로 보는 것,
손으로 하는 일,
발로 가는 곳에
모두 유의하라는
말씀이다.

------------------------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 
모두 불편해 하는 진실,
지옥에 대해 말씀하셨다.

지옥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곳이라 하셨다.

그래서 지옥에서는 
영원히 구더기와 
함께 살며, 마치 
소금으로 배추나 
생선을 절이듯,
불로 절여져야 함을
말씀하셨다.

실지로 지옥이 이러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성경에서 설명하는
천국과 지옥을 정리하면, 
천국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곳이고, 지옥은 
영원히 하나님의 부재를 
느끼며 살아야 하는 곳이다.

영원히 하나님의 
부재 가운데 사는
삶이야말로 예수님이
말씀하셨듯, 구더기와
살며, 불로 절여지는 
것과 같이 고통스런
삶일지도 모른다.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소금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다.

성경에서 소금은
정결함, 거룩함, 
하나님 언약의
불변성 등을
상징한다고 한다.

하나님은 모든 제물을 
소금과 함께 드리도록
하셨다 (레 2: 13). 

이는 제물에 소금을
넣도록 하기 위함이다.

제물에 소금을 넣는
것은 우선 소금으로 
제물을 정결케 하여
거룩하게 하려는 
목적이다.

또한 불변하는 하나님의 
언약을 나타내시기 
위해 제물에 소금을 
넣게 하셨다. 

소금이 이러한 것들을 
상징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녹아서 짠 맛을
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소금처럼 자신을 녹여
짠 맛을 내어 사람들을 
화목케 하며, 정결케 하고,
거룩하게 하라고 하셨다.

 

 

<기도하기>

 

주님.

지나고 보니 별 것도 
아닌 것을 놓치지 
않으려 손을 움켜쥐던
저를 돌아봅니다.

그땐 놓치지 않아야 
살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

놓아야 살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
아래 함께 사는
사람들을 귀히
여기게 하소서.

어떤 자리에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을 녹여 짠 맛을
내는, 그래서 부패를
막고 지연시키는
소금이 되게 하소서.

아멘!

 

 

* 두란노 출판사 발행 생명의 삶 본문 묵상을 올리는 블로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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