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26(금) 큐티: 마가복음 9:30-37
<묵상하기>
*다시 보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
예수님이 처음 자신의
수난에 대해 예고한
곳은 가이사랴
빌립보였다.
길에서 이를
예고하셨다.
그때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특히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난에
대해 가장 강하게
저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에 오르셔서
영광을 체험하게 하셨다.
왜 이들만 데리고
변화산에 오르셨을까?
이들을 총애해서
그러셨을까?
물론 그런 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 3 명이 예수님의
수난에 대해 가장
저항적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대표적으로
저항감을 보인
제자들과 함께
변화산에 오르신
것일 수 있다.
그리고 변화산
어귀의 마을에서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셨다.
그런 다음, 갈릴리를
통과하여 가버나움으로
향하셨다.
가버나움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은
두 번째로 자신의
수난, 죽음, 부활을
예고하셨다.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말씀은 주로
길에서 이루어졌다.
길에서.....
수난을 두 번
예고하셨으나,
제자들은 여전히
깨닫지 못하였고,
질문하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제자들은 왜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했을까?
질문했다가 예수님의
수난, 죽음을 확인 받게
될 것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수난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을 두려워 했다는
의미이다.
혹은 질문했다가
베드로처럼 "사탄아
불러가라!"는 책망을
듣게 되는 것을
두려워 했을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들도
예수님처럼 수난을
받게 되는 것을
두려워 했을 수도 있다.
----------------------
그렇게 예수님과
일행은 가버나움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 때문에 길에서
쟁론했는지 물으셨다.
가버나움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예수님은
십자가를 묵상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누가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인가를 쟁론하였다.
이 쟁론의 중심에
누가 있었을까?
아마도 베드로, 요한,
야고보였을 것이다.
본래도 적극적인
성향인 이들이 변화산
영광까지 체험했으니,
자신들의 위상이 한껏
높아졌다고 착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에는 특히
예수님이 이 3 명의
제자를 대동하신
장면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변화산에 오를실 때에
이들과 동행하셨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게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이들을 가까이
두셨다.
그래서 그동안
이 3 명의 제자가
예수님의 가장 큰
총애를 받은 측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항상
곁에 가까이 두신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어떤 목사님의
설교 강해를 보니 매우
흥미로운 견해가
제시되어 있었다.
예수님이 특별히
이 세사람을 대동했던
이유는 이 세 사람이
제자들 중에서
요주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세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는데 적극적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세상
권력에 대한 욕심이
강하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과격한
성향이라는
공통점도 있었다.
그것에 대한 여러
근거를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선 베드로는
예수님이 수난에
대해 말씀하실 때,
가장 강하게 반발하였다.
그것은 세상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체포되실 때,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의 귀를 벨 정도로
과격한 성격이다.
야고보와 요한 형제의
세상 권력에 대한 욕심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들 뿐 아니라,
어머니까지 자리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예수님께 특별 청탁을
넣기까지 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주시기도 하였다.
성격이 급하고
과격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른 제자들과 함께
이 세 사람을 남겨
두고 출타하지 않으려
주의하셨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할 경우,
제자들 사이에 분열과
갈등이 조장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권력욕이
강한 그들 안에서
믿음의 잠재성도
보셨다.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할
정도로 우직하게
십자가의 길을
달려갈 것을 보셨다.
야고보가 제자들
가운데 가장 먼저
순교의 길을 달려가게
될 것도 보셨다.
그리고 요한이 우뢰와
같은 성향을 벗어 버리고,
늘 사랑을 입에 달고 사는
길을 달려갈 것을 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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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높아지려면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겨야 함을
말씀하셨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에서 높아지는
원리라고 가르치셨다.
<기도하기>
주님.
예수님은 십자가를
묵상하시는데,
세상의 자리를 놓고
논쟁하는 것이
저희 현실입니다.
예수님은 저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려
하는데, 눈 앞의 좋은
것을 달라고 하는 것이
저희의 실존입니다.
끝 자리를 마다 하고,
섬기는 것을 마다 하고,
앞에 서려 하며, 섬김을
받으려 하는 것이 저희의
모습입니다.
어느 곳에 가든,
낮은 자리에 먼저
눈이 가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섬기는 자리를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아멘!
* 두란노 출판사 발행 생명의 삶 본문 묵상을 올리는 블로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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