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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열왕기상

여호사밧 vs 아하시야

by 운석57 2024. 5. 31.

2024.05.31(금) 큐티: 열왕기상 22:41-53

 

<묵상하기>

 

*여호사밧 vs 아하시야*

유다 왕 여호사밧은
아버지 아사 왕을
따라 평생 의로운 
길을 갔다.

그래서 아사 왕 재위 
41년, 여호사밧 재위 
25년 동안 남 유다의
정세는 안정되었다.

여호사밧은 우상들을
유다에서 모두 
제거하였으며, 이방 
신전에서 남색하는 
창기들을 몰아냈다.

그리고 제사장들로
하여금 유다 전역을
다니며 율법책을 
가르치도록 하였다
(대하 17: 9).

그러나 여호사밧은
지방 산당은 없애지
못했다.

그래서 여전히 지방 
산당에서 하나님께 
제사가 드려지고
있었다.

남 유다 역대  왕 중에서
산당을 없앤 왕은 오직
히스기야와 요시야 뿐 
이었다.

그 만큼 토착화 되어 
있는 산당을 없애기가
쉽지 않았다.

하나님이 산당을 그대로
두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았던 이유는 산당이
본래 바알이나 아세라를
섬기기 위해 세워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산당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장소로
활용되었으나, 언제든
백성들을 우상으로 
이끌 위험성이 컸다.

또한 여호사밧은 
이스라엘과의 
화평 정책을
추구하였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가능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할 것을 바라신다
(롬 12: 8).

그러나 화평을 지키기
위해 거룩함을 
희생해서는 안된다.

이스라엘과의 화평은
바로 거룩함을 
희생시키는 일이었다.

이스라엘과의 화평은
여호사밧으로 하여금
아람과의 전쟁에 
동참하게 하였다.

그 일로 여호사밧은
목숨을 잃을 뻔하였으며,
아합이 피를 흘리고
죽는 것을 목격하였다.

여호사밧이 남 유다로
돌아오자 대를 이어
선지자로 섬기던
하나니의 아들  
예후가 왕을 심히
책망하였다
(대하 19: 2).

그 책망을 겸허히
받아들인 여호사밧은
개혁 정치를 단행하였다.

그래서 남 유다 지역
뿐 아니라, 에브라임
산지까지 두루 다니며 
하나님을 전도하였다
(대하 19: 4).

그렇게 하나님 앞에
신실하였지만, 
사람인지라 여전히 
실수를 하였다.

그는 솔로몬처럼 
무역으로 큰 부를
쌓기를 갈망하였다.

그래서 선박을 제조하여
오빌로 금을 구하러
보내려고 했으나,
그 배가 파선되었다.

하나님이 그의 무역
사업을 막으신 것이다.

무역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깨달은 그는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같이 무역 사업을 하자고 
제안하였으나 거절하였다.

그렇게 여호사밧의
통치 시대는 끝나고
그의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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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북 이스라엘도
아합이 죽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년 밖에
통치하지 못했다.

낙상으로 병을 얻어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짧은 통치 기간 동안
그는 불의한 길을
걸어갔다.

성경이 특히 그가
아버지 뿐 아니라,
어머니의 길을
걸었다고 기록하였다.

그가 어머니 이세벨의 
악한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기도하기>

 

주님.

주님은 여호사밧이
백성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을
전하니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거룩하지
못한 화평과 돈에 대한
갈망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저희로 말씀과 가까이
지내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 주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세상과 화목하려
경건하지 못함과
타협하며, 돈과
손잡는 일이 없게
도우소서. 

저희는 연약하여,
자주 세상과 
화목하려고 말씀을
멀리하곤 합니다.

저희의 연약함을
살피사 심령이
강건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아멘!

 

 

* 두란노 출판사 발행 생명의 삶 본문 묵상을 올리는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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