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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묵상

인내의 달콤함을 아십니까?

by 운석57 2018. 12. 25.

 말씀 묵상

 

강해 제목: 억지로 참는 것은 성령의 열매가 아니다

 

말씀: 야고보서 1장 2~4절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오늘 말씀을 듣다 보니 한 격언이 생각났습니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그런데 진정한 성도에게는 인내도 달콤한 것인가 봅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 오래 참음이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성도에게 오래 참음은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성경을 통해 기다리는 중에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기다림에는 항상 하나님의 계획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참을 줄 아는 것이 성도에게 굉장히 중요한 능력이 됩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을 참지 못하고 어려워하는 것은 성령의 눈이 아직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기다림의 대가들이었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면서 120년을 기다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된 아들을 얻는데 20년이 걸렸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부르시기 전,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을 쳤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고도 14년을 기다렸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기다림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신다고 합니다.

 

사울 왕이 아멜렉과 전쟁을 할 때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제사장 사무엘이 오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급한 김에 자기가 제사를 드립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사울 왕을 마음에서 버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성도는 무엇을 오래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말씀을 유심히 보니 기다림의 주체가 시험 가운데 주어지는 하나님의 응답인 것 같습니다.

 

시험 가운데 더디 보내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을 오래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거의 대부분 완행 열차로 옵니다.

 

정거장 마다 다 멈췄다가 오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야고보 사도는 시험 자체를 기쁘게 받아들인다면 그 시험에 대한 응답을 인내하고 기다리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게 된다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오래 참는 것의 해법은 시험을 기뻐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입니다.

 

목사님 말씀으로는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 그 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다보면 시험을 기뻐하는 것도, 오래 기다리는 것도 저절로 된다고 합니다.

 

즉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가 있는 사람은 시험을 받고 있는 중에도 이미 응답을 받은 것처럼 기쁨이 넘치게 되고 

 

그럼으로써 오래 참음이라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충만함의 역사입니다.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오래 기다리는 것이 가능한 사람이 되게 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를 통해 이 관문을 통과해야 하겠습니다.

 

 

 기도

 

 

주님.

 

야고보 사도가 위대한 것은 

 

시험이 기쁜 것이라는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가 얼마나 많은 시험 속에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만난 시험들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마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시험을 온전히 기뻐하라는 담담한 조언은

 

그의 뼈 속 깊은 곳에서 신음처럼 터져나온 감동이라서

 

그렇게 사람들의 가슴을 강하게 흔드는 것 같습니다.

 

주님.

 

아직은 시험이 기쁘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야고보의 시험처럼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것도 아닌데도 그렇습니다.

 

그냥 일상 속에서 묻어나는 시험인데도 그렇습니다.

 

저의 한계를 아셔서, 저의 그릇을 아셔서

 

초대교회 교인으로 태어나지 않게 하신 것 같습니다.

 

또한 저로 인내의 달콤함을 알게 하소서.

 

깨달케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