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10(토) 큐티: 창세기 21:22-34
<묵상하기>
사라를 아비멜렉에
빼앗겼다가 다시
찾은 사건 이후로도
아브라함은 계속 블레셋
지역에 머물러 산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비멜렉이
군대 장관을 대동하고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평화
협정을 맺기를 청한다.
왕의 지위, 아비멜렉 외에도
군대 장관이라는 관직도
있는 것을 보니 블레셋은
부족 국가의 체제를 어느 정도
갖추었던 것 같다.
아비멜렉이 군대 장관까지
대동하고 아브라함을 찾았다는
것은 아브라함을 개인이 아닌,
한 부족의 대표로 인정했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즉 족장으로 대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평화
협정을 맺고자 했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세력 또는 힘을
두려워했다는 의미인 것 같다.
아브라함을 왜 두려워했을까?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을
아비멜렉은 분명히
알았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위협이 되는
세력이라고 여겼으면,
자신의 지역에서 나가라고
요구하면 된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평화 협정을 맺고자 한
이유는, 사라를 돌려줄 때
아브라함에게 블레셋의
지역에서 얼마든지 살아도
좋다고 약속했기 때문일 것이다.
------------------------------------------
평화 협정을 맺은 후,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가솔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대해
항의하였다.
그리고 일곱 양으로 가격을
쳐서 자신이 판 우물을
아비멜렉으로부터
사겠다고 하였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땅이므로 그는 작은 땅이라도
자신의 소유로 만드는 일을
시작하고자 하였다.
하나님이 언약하셨고
아브라함은 그 언약을
향해 작은 발걸음을
뗀 것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소유가 된 우물을
브엘세바라고 이름 지었다.
브엘세바는 맹세라는
뜻 외에도 일곱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일곱은 히브리어로
온전함을 의미한다.
온전한 우물, 즉 생명수를
온전한 값, 즉 일곱 마리의
암양을 지불하고 샀음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언약은 온전하며,
아브라함이 그 언약을 향해
걸어간 길 또한 온전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큐티 > 창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심 (0) | 2022.09.12 |
---|---|
이삭의 희생 (0) | 2022.09.11 |
얻음과 잃음 (0) | 2022.09.09 |
이삭, 웃음 가운데 태어난 사람 (0) | 2022.09.08 |
비겁함 속에도 임하신 하나님 (0) | 2022.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