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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사도행전

아무도 베드로를 가둘 수 없었다

by 운석57 2023. 7. 18.

2023.07.18(화) 큐티: 사도행전 12:1-12

 

<묵상하기>

 

*아무도 베드로를 가둘 수 없었다*

기독교가 안디옥을 비롯한 
이방 지역으로 확장되는
그 때에 유다는 헤롯 왕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이때의 헤롯 왕은 
헤롯 대왕의 손자
해롯 아그립바 1세를 
가리킨다.

헤롯 왕은 에돔 족속으로 
로마 황제에 의해 
분봉왕에 책봉되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견고하게 하려고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 노력하였다.

그런데 환심을 사려고
벌인 첫 번째 일이 
교회에 대한 
탄압이었다.

그는 우선 요한의 
형제 야고보 사도를
칼로 죽였다.

즉 세례 요한처럼
칼로 목을 베는 
참수형에 처했다는
의미이다.

사도 중에서 첫 번째
순교자가 생긴 것이다.

그 일을 보고 유대인들이
환호하자, 사도들의 
수장인 베드로를 잡아
옥에 가두었다.

그런데 그 때가 
무교절 기간이라
바로 처형할 수 없어서
무교절 기간 동안 
감옥에 가두어야 했다.

베드로로서는 세 번째
투옥이었다.

첫 번째는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잡혔다가
유대교 지도자들이 
민심을 의식하여
그냥 방면하였다.

두 번째는 모든 사도들이
함께 투옥되었으나, 천사가
감옥에서 나오도록 도왔다.

헤롯은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감시를 철저히 하였다. 

즉 베드로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군인
16 명을 4 개의 조로
나눠 (4 명/조)
감시하게 하였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밤에 잘 때는 죄수의 
양쪽 팔을 쇠고랑으로 
묶은 후, 그 쇠고랑의
끝을 양쪽에 있는 군인의 
몸에 묶게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감옥의 앞뒤에
보초를 세웠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탈옥이
불가능하였다.

-------------------------

그런 상태에서 
베드로는 깊이도
잠들었나 보다.

주의 사자가 옆구리를
쳐서 깨워야 할 정도로.....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자신이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들었던 사람이다.

그리고 이미 스데반이나
야고보의 순교를 겪었기
때문에 자신의 순교도
당연히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감옥에 갇힌
상황에 대해 담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가 낮 동안의 
투옥과 심문  등으로 
몹시 피곤했을 것이다.

그렇게 깊이 잠든
베드로를 천사가
깨워서 옷을 입게 하고
신발을 신게 한 후,
감옥을 나오도록 
안내하였다.

시내로 나오는 
거리에 올 때까지
베드로는 비몽사몽
상태였다.

자신이 환상을
보는 것이라 여겼다.

천사가 떠나고 나서야
비로서 정신이 들어 
자신이 풀려난 것을 
알게 되었다.

정신을 차린 베드로는
급히 마가의 다락방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성도들이 
모여 베드로의 석방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가 소유한
다락방, 즉 마가의
다락방은 역사적인 
순간 마다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 곳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만찬이 이루어졌다.

그때 다락방의 소유자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이 쓰신다는 제자의
말에 즉시 만찬 자리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그 다락방은 
예수님 승천 후,
120 문도에게 성령 
강림이 있던 곳이다.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 위험한 시기에 
자신의 다락방을
120명의 문도에게 
기도의 장소로 
제공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가 
잡혀간 그 위험한
시기에 그곳은 또 
베드로의 석방을 
위해 교인들이 모여 
기도하는 장소가 되었다.

 

 

<기도하기>

 

주님.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는 기도의
장소만 제공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도 모임을 주관하는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모하고
믿는 마음으로 
어떠한 위험도
감수한 용감한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녀의 선한 영향력이
형제 바나바, 그리고
아들 마가로 이어졌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은
그냥 다락방이
아니라, 그녀의 
예수님에 대한 
헌신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저희의 집이,
저희 가정이,
그리고 저희 방이
마가의 다락방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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