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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사도행전

1 차 전도 여행을 마침

by 운석57 2023. 7. 25.

2023.07.25(화) 큐티: 사도행전 14:19-28

 

<묵상하기>

 

*1 차 전도여행을 마침*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성공적으로 선교를 
하고 있고 있다는 소문이 
이고니온과 비시니아
안디옥으로 퍼졌다.

발 없는 말이 항상
천리를 가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곳의 무리들이
선교를 방해하려고
루스드라로 몰려왔다.

얼마 전만 해도 분명
루스드라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제우스 신으로
숭배하려 했었다.

그러나 이고니온과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온 무리들이 선동하자
그들은 돌을 들어 
바울을 쳤다.

놀라운 일도 아니다.

십자가 고난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던
예수님을 향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호산나! 하고 외치던
사람들이 있었다.

며칠 후, 그들은 
빌라도 앞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고
외쳤다.

무엇이 루스드라
사람들로 하여금
돌을 던지게 하였을까?

루스드라는 제우스를
비롯하여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러 신들을 
숭배하는 도시였다.

그렇게 우상숭배가
성행했기 때문에, 
우상숭배와 관련된
산업 또한 매우 발달해 
있었다고 한다. 

즉 우상숭배가 안정적인
비즈니스로 자리 잡고 
있었고, 이를 통해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의미이다. 

이고니온과 안디옥에서
온 무리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퍼지면,
그들의 사업에 막대한
지장이 있을 것이라
선동했을 것이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울을
돌로 쳤고, 바울은 거의
죽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바울의 시신을
끌어다가 성 밖에 버렸다.

율법에 따르면, 사람을
돌로 칠 때에는 성 밖에서
하도록 되어 있다.

이 무리들은 그마저도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바울이 죽었다고 
생각한 제자들은
시신을 거두기 위해
모였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울을
일으켜 세우셨다.

20절에 사용된 "일어나"
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일으켜 세우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즉 바울이 빈사 
상태에서 스스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주께서 일으켜 
세우신 것이다.

그렇게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바울은 제자들과 
함께 루스드라 성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는 아직도 살인자들이
있는 위험한 곳이다.

그럼에도 거기에는 바울의
제자들도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은 아직
믿음이 강하지 않은
초신자들이었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을 위해 
그 성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누가는 바울이 
이렇게 돌에 맞고 수난을
당하는 동안, 바나바의 
행적은 기록하지 않았다.

바나바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렇게 루스드라에서
하루를 보내고, 회복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더베로 떠났다.

더베에서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니, 많은
제자들이 생겼다.

바울은 더베를
반환점으로 하여 다시
루스드라-->이고니온
-->비시니아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택했다.

더베에서 동쪽으로 
조금 더 가면 바울의
고향 다소가 나오고 
다소에서 다시 동쪽으로
조금 더 가면 수리아 
안디옥이 나온다.

즉 더베-->다소-->
수리아 안디옥이
지름길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 지름길로
가지 않고 핍박과 박해를
받던 도시들을 다시 돌아
수리아 안디옥으로 오는
여정을 선택했다.

그동안 자신이 세운 
갈라디아 교회들을 
돌보고 굳게 세우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와 성도들을
자기 목숨 보다
귀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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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올 때는 지난 번에 
풍토병으로 그냥 
지나쳤던 버가에서도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배를 타고 
출발점인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갔다.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온 바울은 
2 년 동안의 
1 차 전도 여행의 
결과를 교회에 
보고하였다.

바울은 전도 여행의
모든 결실이 자신들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동역 때문임을 강조하였다.

 

 

<기도하기>

 

주님.

바울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자,
수 없이 매를 맞았고
돌에 맞았으며,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쫓겨 다녔습니다.

2000년이 지난 오늘도
아직 복음이 땅끝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울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주님.

아직도 예수를 모르고
복음을 모르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문을
열어 주소서.

코로나로 닫힌 선교지에
새로운 문이 열리게 
도우소서.

선교사들과 그 가족들을
생명의 싸개로 보호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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