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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사도행전

성령님의 복합적인 마음

by 운석57 2023. 8. 12.

2023.08.12(토) 큐티: 사도행전 21:1-14

 

<묵상하기>

 

*성령님의 복합적인 마음*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과 눈물로
작별을 한 바울 일행은
배를 타고 예루살렘을
향해 떠났다.

그런데 밀레도에서
예루살렘 근처까지
직행하는 배편이
없었기 때문에 
여러 섬들과 항구를
거치면서 이동하였다.

누가가 이러한
경유지들의 이름을
모두 기록했다는 것은 
이곳들이 아름다움으로
유명한 곳이었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
섬들의 아름다움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는 오직 오순절 이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는 
것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바울과 그 일행은 
바다라에서 베니게
(레바논)로 가는
배를 타게 된다.

레바논까지는 배로
닷세가 걸리는 
길이라 한다.

레바논으로 가는 배에
앉아서 바울은 구브로 
(키프로스) 섬을 
바라보았다.

그 섬을 바라보며
바울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바나바와 함께 시작했던
1 차 선교여행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을까? 

구브로는 바울이 
선교를 위해 이름을 
사울에서 바울로 
바꾼 곳이다.

--------------------------

바울과 일행은
베니게 (레바논)의
두로에 일주일간
머물게 되었다.

그동안 바울은 
제자들을 찾아간다.

두로에도 소수이지만
성도들이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을
벗어나 두로와 시돈에
가셔서 복음을 전하신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때 귀신 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했던 
수로보니게 여인을
만나셨다.

그 여인은 예수님께 
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말했고,
예수님은 그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다.

아마도 그 여인을
비롯하여 스데반의
순교 이후 이곳에 와서
복음을 전한 사람들로
인해 성도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바울이 두로의 
제자들을 만나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
이들이 성령으로 
감동되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만류하였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하는 바울의 
의지는 확고하였다.

두로에서 여러 날을 
지낸 후, 바울과 일행이
떠나는 날이 다가왔다.

그러자 두로의 제자들은
그 가족들까지 모두 
데리고 바울을 전송하기 
위해 항구에 나왔다.

그리고 수 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두로항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개의치 않고
기도회를 연 것이다.

성령께서 바울의
여정에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였을 것이다.

------------------------

바울 일행은 두로에서 
짐을 모두 푼 배에 다시 
승선하여 돌로마이에서
하선하게 된다.

그리고 걸어서
가이사랴에 
도착한 후, 집사 
빌립의 집에
머무르게 된다.

빌립 집사는 에디오피아
재정 담당 내시에게
세례를 준 후, 가이사랴로
내려와서 20년 동안 
그곳에 거주하고 있었다.

빌립에게는 딸이 
넷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처녀로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

다른 사도들에게도
자녀가 있었을 것이나,
누가가 유독 빌립의
자녀들에 대해서 
밝힌 것은 빌립의
딸들의 믿음이 깊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빌립의 딸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받게될 핍박과 환난에 
대해서 예언하지 않았다.

정작 그것을 예언한 
사람은 빌립의 집에 
다니러 온 아가보라 
하는 예언자였다.

아가보는 예전에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 와서 
예루살렘의 기근을
예언했던 사람이다.

이 사람의 예언으로
이방 교회들은 
예루살렘을 위한 
구제 헌금을 미리부터
준비할 수 있었다.

아가보는 바울이
받을 핍박을 말로만
전하지 않았다.

바울의 허리띠로 자기
수족을 결박하는 모습을 
보이며 예언하였다.

그 예언을 듣자,
모든 사람들이
바울의 예루살렘
행을 반대하였다.

누가, 디모데, 
각 교회의 대표들,
빌립, 빌립의 딸들이
모두 만류하였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계속 울면서 만류하니,
바울로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인가
하는 혼란이 생겼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받은 성령님의 뜻을
확신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울음을 
멈추라고 부탁하였다.

바울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한 사람들은 
만류함을 그치고,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기도하였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셨던 것처럼
순종의 기도를 
드린 것이다.

--------------------

바울과 제자들은
모두 성령의 감동을
입었음에도 서로 다른
판단을 하였다.

왜 그랬을까?

물론 그것은 성령의 
감동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어떤 목사님이
이에 대해 "성령의
복합적인 마음"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그 표현이 가슴에
와 닿았다.

하나님의 뜻대로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기를 원하시나,
다른 한편, 바울이
당할 핍박과 환난이
가슴 아파서 말리고
싶은 복합적인 마음인
것이다.

 

 

<기도하기>

 

주님.

바울의 핍박과
환난에 대해 
하나님이 품으신
복합적인 마음을
깨닫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쓴 잔에 대해 품으셨던
바로 그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저희의 고난도 
그러한 마음으로 
바라보시리라 믿습니다.

저희도 바울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을 선택하여
달려가기 원합니다.

저희로 달려갈 길
다 달려갈 때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도우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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