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31(수) 큐티: 마가복음 10:46-52
<묵상하기>
*길 가에 앉아서...*
예수님과 일행은
예루살렘을 향해
가던 중, 여리고
가까이를 지나고
있었다.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약 28 킬로 떨어진,
종려나무가 많은
아름다운 성읍이라
한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사는 대제사장,
제사장들을 비롯한
지배계층이 여리고에
별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착한 사마리아 비유에서
강도를 맞아 쓰러진
사람 옆으로 제사장,
레위인이 지나간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그 여리고로 가는
길가에 바디매오라는
시각장애인이
앉아 있었다.
바디매오는 디매오의
아들이란 뜻으로
이름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조차 불리지 않은
존재였다는 의미이다.
구걸로 연명하는
시각장애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그는 구걸하기
위해 길 가에 앉아
있었다.
평소처럼 그는
소망을 잃은 채,
길 가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나사렛
예수가 그곳을
지나가신다는
수군거림을
들었다.
그도 예수님의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찾아 나설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그 길 가를 지나신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사람들은 분명 나사렛
예수라고 수군거렸는데,
그는 예수님을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대신 "다윗의
자손이여!" 하고
불렀다.
확신에 차서
소리 질렀다.
예수님을 "메시아"
라고 부른 것이다.
마가복음 전체에서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메시아라 부른 사람은
바디매오가 유일하다.
야고보와 요한조차
보지 못한 것을
시각장애인인
바디매오는
정확히 보고
있었던 것이다.
바디매오가
소리치자 사람들이
그에게 잠잠하라고
꾸짖었다.
그는 사람들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잠잠해야 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았다.
더욱 크게
소리 질렀다!
마치 미친 사람처럼
"메시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절규하였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관되게
약속하신 말씀 중 하나가
"너는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리라"이다.
그 약속 대로
바디매오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예수님은
가시던 걸음을
멈추셨다.
그리고 그를 부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를 꾸짖던
사람들은 태도를 바꿔
그에게 안심하라고
하면서 예수님이
부르신다고 말하였다.
참 간사한 모습이다.
예수님이 부르신다는
말을 듣고 바디매오는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갔다.
옷이 귀했던
그 시대에 겉옷은
매우 귀한 것이었다.
낮에는 더위를,
밤에는 추위를
가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옷이지만 집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시각장애인
구걸인에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가 가진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귀한 겉옷을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부르시자 버리고
뛰어갔다.
예수님은 바디매오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는지 물으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시기 전,
무엇을 원하는지
물으시곤 하셨다.
앞서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청탁을 드리려고
나아왔을 때에도,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가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는지 물으셨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자신이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바디매오는
"보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자신의 소원을
분명히 말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이
반드시 자신을 보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보였다.
예수님은 그에게
"눈을 떠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대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는 앞서 눈을
고침 받은 사람처럼
단계적으로 눈을
뜨지 않았다.
곧 보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육신의 눈 뿐 아니라
영혼의 눈을 뜬 그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을 갔다.
그가 부르짖으니,
주님이 그에게
응답하셨고 그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것, 즉 제자의
길을 보여주셨다.
<기도하기>
주님.
바디매오는 세상을
보는 눈은 어두었지만,
예수님을 보는 영혼의
눈은 밝았습니다.
그 영혼의 눈으로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알아보았고,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본다고
믿었던 제자들 보다,
그리고 바리새인들
보다 복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볼 수 있기를
바라는 꿈을 이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꿈을 얻었습니다.
저희로 영안이 열리는
꿈을 이루고,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사는
꿈을 꾸게 하소서.
아멘!
* 두란노 출판사 발행 생명의 삶 본문 묵상을 올리는 블로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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