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2(금) 큐티: 마가복음 11:11-19
<묵상하기>
*과실의 동네에 과실이 없다*
마가는 오늘 본문
11절에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모든
것을 둘러보셨다고
기록하였다.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해가 질 때까지
예루살렘 성전을 찬찬히
둘러보시고 베다니로
돌아가신 것이다.
즉 다음날 성전을 보고
화를 내신 것이 결코
즉흥적이거나 감정적인
행동이 아니셨다는
의미이다.
이미 전날에 성전의
현실을 보시고
많은 생각을
하셨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오실 때마다, 성 안에서
유숙하지 않으셨다.
베다니에서
유숙하셨다.
베다니는 죽음에서
살리신 나사로
남매를 비롯한
가까운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였다.
베다니에서 하루 밤을
유숙하신 예수님은
아침에 예루살렘을
향해 출발하셨다.
그런데 아침을 드시지
않고 출발하셨는지
시장함을 느끼셨다.
그리고 멀리서
잎사귀가 무성한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열매를
얻을까 하여
다가 가셨다.
그런데 잎사귀 외에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시고 그 나무를
저주하셨다.
마가는 그 때가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다고
기록하였다.
저명한 역사학자
러셀은 성경의
이 귀절로 인해
자신은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무화과의 때도 아닌데,
열매가 없다고 나무를
저주하신 예수님을
자신은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무화과
나무는 2~4번까지도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그 중 조기에 맺어지는
열매를 파게, 제철에
맺어지는 열매를
트아니라고 부른다.
파게는 1월부터
맺어지는 무화과
열매로 크기는 작으나,
어려운 사람들에게
좋은 요깃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예수님이 기대하셨던
것은 파게이고, 마가가
때가 아니라고 한 것은
트아니의 때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러셀의 말처럼,
자연의 법칙상
요구할 수 없는
것을 빌미로
저주를 내리시는
분이 아니시다.
또한 파게가
열리지 않는
나무는 트아니도
맺을 수 없다.
즉 예수님이 저주하신
나무는 잎사귀만
무성할 뿐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였다.
그리고 그 일은
베다니에서
일어났다.
베다니는 "푸른
과실의 집"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과실이 잘
열리기로 유명한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그 마을에 있는
무화과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 채 잎만
무성하였다.
그것은 마치 룻기의
나오미 가족이 빵이
없어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이전하는
것과 같은 형세이다.
나오미 가족은
빵집이라는 의미의
베들레헴에 빵이
없어 모압으로
떠났다.
두 사례는 모두
자기 본분을 다하지
못하며, 영혼이 황폐했던
이스라엘의 현실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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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현실은 성전에서
절정에 이른다.
성전은 더 이상 경건하고
거룩한 장소가 아니었다.
제물로 바칠 가축들을
매매하는 상인들과
환전상들로 인해
혼란 그 자체였다.
문제는 그러한 상인들
뒤에는 어마 어마한
이권을 챙기는 지배
계층이 있다는 점이다.
예수님은 모든 상인들과
환전상들을 성전에서
몰아내셨다.
그리고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데, 너희가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고
책망하셨다.
이 말씀은 이사야서
56: 7을 인용하신 것이다.
성전의 본분은
기도하는 집이다.
그러나 성전에
기도는 없고
돈과 이권만이
남았다.
즉 예레미야 7장에
기록된 것과 같이
성전이 도둑의 소굴,
강도의 소굴이
된 것이다.
예수님이 성전 안의
모든 상인들을 몰아낸
것을 성전 청결 또는
성전 정화라 부른다.
예수님이 단지 성전을
정화하고 계신 것일까?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완전히 무너지고
폐허가 되실 것을
알고 계셨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회복은 성전을 청결히
하는 것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성전은 파괴되어야 하고
새 성전이신 예수님으로
서야 한다.
따라서 예수님의 행동은
옛 성전이 파괴되어야
함을 나타내신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기도하기>
주님.
과실의 동네에
과실은 없고
잎만 무성하였습니다.
기도의 집, 성전에
기도는 없고 맘몬 만이
가득하였습니다.
성전인 제 안에
기도는 없고,
세상과 돈에 대한
염려와 관심만
가득하지 않은지
돌아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깨뜨려 버리고
무화과 잎으로
자신을 가렸던
아담과 하와가
되지 않게 하소서.
무화과 열매 대신
무화과 잎을 자랑하는
저희가 되지 않게
도우소서.
아멘!
* 두란노 출판사 발행 생명의 삶 본문 묵상을 올리는 블로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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