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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마가복음

담담한 십자가

by 운석57 2024. 2. 20.

2024.02.20(화) 큐티: 마가복음 15:24-32

 

<묵상하기>

 

*담담한 십자가*

마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장면을 간략하게 
기록하였다. 

마치 사실 보도를
하는 신문 기사처럼
한 줄로 기록하였다.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십자가에 달릴 때는
먼저 가로 기둥에 
죄수의 팔을 뻗게
한 후, 손목에 
5-7 인치의 대못을
박아 고정한다고 한다.

못이 손목에 박힐 때의
고통을 영어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excruciating", 
즉 "고문하다" 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그만큼 고통이
처절하다는 
의미이다.

그런 다음 가로 기둥을
들어 올려서 십자가의 
수직 기둥에 부착시킨다.

그리고 양쪽 발을 수직 
기둥 양쪽 모서리 면에 
갖다 대고 발꿈치에 못을 
박아 고정하였다.

발꿈치에는 신경이
많이 분포되어 통증이
극도로 심하다고 한다.

또한 십자가에 달리게
되면 팔이 늘어나면서,
어깨 관절에 탈구가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질식으로 사망하게 
된다고 한다.

십자가에 수직으로
달리면 횡경막이 숨을 
들이 쉬는 상태로 
유지되기 때문에 숨을 
내쉬기 위해서는
발을 세워야 한다.

숨을 쉴 때마다 발에서 
시작되어 온 몸으로
퍼지는 극심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숨을 
쉬기 위해 발을 
세우는 것을 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질식으로 죽게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마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현장을 아무
수식어 없이 짧고
담담하게 기록하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고통이 
담담한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왜 그랬을까?
 
십자가에 달리심조차
우상화하지 않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십자가의 고통이
아닌, 구원 사역을
향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릴 때,
십자가 아래서는 한창 
제비뽑기가 진행되었다.

예수님 옷을 차지하기
위한 제비뽑기였다.

이는 다윗이 시편
22: 18에 예언한
말씀이 성취된 
것이다.

요한은 이 장면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기록하였다.

로마 병사들은 예수님의
겉옷을 네 깃으로 나눠
각 각 한 깃씩 가졌다.

그러나 속옷은 통으로
짠 것이라 나눌 수가 
없어서 제비를 뽑았다.

이것은 사형 집행을
담당하는 병사들이
부수입을 얻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해서 새벽 6시에 
결정된 예수님의 
십자가형은 아침 
9시에 집행되었다.

판결과 집행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다.

예수님의 십가가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가 
붙었다.

빌라도는 그 죄패를
히브리어, 헬라어,
로마어로 써 붙였다.

세상 만민이 읽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물론 예수님을 
조롱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한 자, 빌라도를 
통해 예수님이 왕으로
세상에 오셨음을
공표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좌우에는
강도들이 달린 
십자가가 세워졌다.

이 또한 이사야 53장
12절의 말씀이 성취된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바로 얼마 전,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님의 좌우에 
앉게 해달라고
청탁했었다.

그 때 예수님은
너희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다.

그들은 감당할 수
있다고 장담하였다.

요한과 야고보는
알지 못했으나,
그들이 예수님께
구한 것은 바로
두 강도의 자리였던
것이다.

우리도 요한과 
야고보처럼 알지
못하는 사이에 
두 강도의 자리를
구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예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면서 
강도의 자리를
구하기를 바라지
않으신다. 

믿음이 장성하여 
진심으로 십자가의 
자리를 구하며
나아가기를 바라신다.

-----------------------

십자가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였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희롱하였다.

그들은 하나 같이
예수님에게 십자가에서
내려와 너를 구원하라고
조롱하였다.

그것은 사탄이 그들의 
입을 빌려서 예수님께
던지는 마지막 
유혹이었다.

예수님은 자신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니다.

이땅의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언약이
이뤄져야만 했다.

한편, 마가는 십자가에
같이 달린 두 강도들도
예수님을 조롱했다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누가는 두 강도 
가운데 한 사람은
예수님께 구원하여
주실 것을 구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아마도 처음에는 
같이 조롱하던 
한 강도가 어느 
결엔가 마음을 
돌이켜 구원을
구하였던 것 같다.

 

 

<기도하기>

 

주님.

주님은 세상을
사셨던 그 시간들
내 내  자신이 어떻게 
죽으실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그 삶을
살아내셨습니다.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말씀을 가르치고
기도하시면서....

제자들과 먹고
마실 때에도 
예수님은 그것을
알고 있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것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평생 알고
있으신 것이 현실이
되어, 십자가 위에
서셨을 때에도 
담담하셨습니다.

그렇게 저희를
위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아멘!

 

* 두란노 출판사 발행 생명의 삶 본문 묵상을 올리는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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