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1. 20 (월) 큐티: 요한복음 6:1-15
<묵상하기>
오병이어는 예수님의
다섯번째 표적이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주리지 않으며..."
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는
떡은 세상의 떡이 아니고
하늘의 떡, 즉 생명의 떡이다.
그러므로 오병이어의 기적
또한 예수님이 하늘의 떡으로
오셔서 사람들을 구원하여
생명을 주시게 되는 것을
나타내는 표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말씀의
등장인물 중에서
이러한 오병이어 기적의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큰 무리가 몰려 왔다.
그곳은 광야이므로 예수님은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움을 아시고
먼저 빌립에게 물으셨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는가?"
질문하신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사롭지 않은 면이 있다.
"우리가 어떻게 떡을 구해
이 사람들을 먹이겠는가?"
물으셔야 할 것 같은데
어디서 떡을 구할 것인가를
물으셨다.
이를 두고 예수님이 빌립에게
하신 질문은 땅에서 떡을 구할 것인가?
하늘의 떡을 구할 것인가를
물으신 질문이라고
해석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여하튼 빌립은 철저히
땅에 속한 떡으로 답을 드렸다.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눠줘도
이백데나리온 이상의 비용이
들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빌립은 영적으로는 조금 둔한 사람
같으나 계산은 매우 빠른 사람이었나 보다.
어떻게 순식간에 떡 값을 계산했을까?
안드레는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지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왔다.
세상의 떡을 직접 가지고
온 것이다.
그런데 빌립과 안드레는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는 떡을
세상의 떡이라 생각한 것 외에도
공통점이 있다.
자신들의 형편을 고려하여
사람들에게 떡을 주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현실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한 점에서도
두 사람은 동일하다.
어쩌면 예수님이 오병이어 기적을
보이신 것은 우선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이 오병이어를 가지고
축사하신 후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나눠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직접 사람들에게
나눠주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사람들에게 아무 댓가 없이
나눠주심을 의미한다.
그렇게 예수님이 나눠주시자
오천명이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찼다.
열둘은 완전한 숫자이므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의
구원은 완전하심을 나타낸다.
물론 열두 지파 유대인들에
대한 구원을 의미하실 수도 있다.
사람들은 세상의 떡으로 배가 부르자
예수님을 선지자라 부르기 시작했으며
세상 임금으로 삼으려 했다.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그들을 떠나셨다.
예수님의 구원의 목적은
정치적 자유, 경제적 풍요, 사회 정의의
실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적은 사람들에게
편안한 삶을 줄수 있을지 모르나
영생을 줄 수는 없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편안한 삶이 아니라
영생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의 떡으로 배부르게 된
사람들에게서 떠나실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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