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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요한복음

침으로 진흙을 이겨서 눈에 발라주셨다

by 운석57 2020. 2. 5.

2020. 02. 05 (수) 큐티: 요한복음 9:1-12

 

 

<묵상하기>

 

왜 예수님은 앞을 못보는
사람이나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고쳐주셨을까?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는
자신들이 어둠 속에 있으면서도
어둠 속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시고 귀가 열리게 하시기 위함이며
이러한 예수님의 목적을 나타내시려고
그렇게 하셨다고 한다.

예수님은 자신들이 눈이 멀고
귀도 멀었음에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믿고
목소리를 높였던
대표적인 사람들로
바리새인을 지목하곤 하셨다.

오늘 말씀에서도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길을 가던 중
날 때부터 앞을 못보는
사람을 보게 된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 사람이 앞을 못보는 것이
누구의 죄입니까 하고
뜬금 없어 보이는
질문을 하였다.

아마도 이전에 38년된
병자를 고치실 때
예수님이 그 사람에게
앞으로는 죄를 짓지 말고 살라고
타이르셨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모든 병은 죄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질병을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자
함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하여 주셨다.

그리고 예수님이 세상에 있으매
아직 사람들이 빛 가운데 있으므로
진리를 밝히 볼 수 있음을
제자들에게 알게 하시려
시각장애인의 눈을 뜨게 하여 주신다.

예수님이 이것을 행하심은
물론 앞을 못보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셔서
눈을 뜨게 해주신 목적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한 목적이
더 크셨던 것 같다.

즉 제자들로 하여금
모든 사람이 영적으로
눈이 먼 상태에 있었으나
예수님의 빛이 비추매
비로서 모든 진리를 밝게
보게 됨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인 것으로 생각된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서
앞을 못보는 사람에게
"네가 볼지어다"
하고 그냥 말씀만 하시지 않고
매우 특별한 행동을 하셨다.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서
그의 눈에 바르신 것이다.

성경에서는 흔히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냥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흙과 같은 존재로 표현한다.

그래서 이 장면은
예수님이 흙과 같은
존재인 인간 안으로
들어오셔서 하나가 되실 때
치유가 일어나는 장면을
보이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 이야기 속에 등장한
앞을 못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예수님이 하신 일은
무척 당황스러운 사건이었을 것 같다.

어떤 사람이 진흙을 개어
(그것도 침으로 개어)
눈에 발라주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과
힘은 대단한 아우라를
보이셨던 것 같다.

물론 그도 예수님에 대해
소문을 들어 익히
알고 있었으리라.

어째든 그는 한마디 의문도
제기하지 않고 즉시 일어나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고
밝은 눈이 되었다.

앞을 못보고 걸인이었던 그가
눈을 뜨고 나타나자
사람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사람은 그가 예전의
구걸하던 사람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그와 비슷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예수님이 보이신 진리는 하나인데
사람들이 이를 보는 것은
언제나 여러 갈래이다.

사람들의 진리에 대한 시각은
늘 삼삼오오 분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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