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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요한복음

너희도 함량 미달이다

by 운석57 2020. 1. 31.

2020. 01. 31 (금) 큐티: 요한복음 7: 53-8: 11

 

 

<묵상하기>

 

예수님은 숙소인 감람산 근처에
가셨다가 아침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오셔서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예수님께로 끌고왔다.

그리고는 모세 율법에는
이러한 죄를 돌로 쳐서 죽이라
하였는데 예수님이라면
어찌할 것인지를 물었다.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함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이
제사장의 직책을 맡으신 것도
아니고 여인의 죄에 대해
예수님께 자문을
구하는 것도 아닌데
여인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올 이유가 없다.

예수님은 아무 말씀 없이
몸을 굽혀 땅에 무언가를 쓰셨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손가락이
무언가를 쓰셨다는 기록이
두번 나온다고 한다.

다니엘 서에서 벨사살 왕에게
경고하시기 위해 벽에 글을 쓰셨던 것,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이 땅에
글을 쓰신 것이 그것이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지은 죄가 마음판에
철필로 새겨져 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의
죄를 심판하겠다고
그녀를 예수님께로
끌고 왔다.

벨사살 왕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저울에 달아 보아
함량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사람들이
말이다.

예수님이 땅에다 쓰신 글은
"여인을 끌고 온 너희 죄도
하나님은 저울에 달아보고 계시다."
라는 내용은 아니었을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답하기를 재차 재촉하자
예수님은 몸을 일으키사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리고는 몸을 굽혀 다시 땅에 글을 쓰셨다.

어떤 분이 쓰신 글을 보니
이때 예수님이 땅에 쓰신 글은
여인의 죄를 심판하겠다고 온
사람들의 이름일 것이라
추측하였다.

예레미아 17장의 말씀처럼

예수님의 생수를 버린 자들은
수치를 당하게 되며 그 이름이
메마른 땅에 쓰여진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라는
의미가 담긴.....

여하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양심을 가책을 느낀 군중들은
어른에서 아이까지 모두 떠나고
여인과 예수님만이 남았다.

그래도 양심을 가책을 느끼고
떠난 사람은 일말의 선함이
남아있는 사람이 아닐까?

요즘 같아서는 나는 죄없으니
나부터 돌을 던지겠습니다
하고 나설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다.

예수님은 모두 떠난 것을 보시고
여인에게 "모두 어디 갔느냐?
너를 고발한 자가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자신의 눈으로 보신 것을
왜 여인에게 물어보셨을까?

여인의 입에서
"나를 정죄하는 자가 없습니다."라는
답을 끌어내기 위해서 일 것이다.

하나님 밖에는
자신의 죄를 정죄할
사람이 없으니
누구에게도 기죽지 말고
떳떳이 살라고
말씀해 주시기 위해
물어보신 것 같다.

 

<기도>

부끄러운 죄를 짓다가
현장에서 잡혀
자신을 정죄하려는
성난 군중들의 한 가운데
속절없이 서있었던 여인.

그녀가 돌에 맞아 죽는 것을
모두 마땅히 여겼습니다.
자신도 그렇게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 소망도 빛도 없이
오직 수치만을 입고
서있던 여인에게
예수님은 손가락을 들어
죄없다 써주시고
따뜻히 바라봐 주셨습니다.

아무도 너를 정죄하지 않으니
편히 가서 살라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타일러 주셨습니다.

그날 그녀는 수치를 당했으나
영원한 소망과 빛을 얻었습니다.

주님 안에 소망과 빛이 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