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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데살로니가전서

무엇이 복음에 합당한 것인가?

by 운석57 2024. 8. 21.

2024.08.21(수) 큐티: 데살로니가전서 2:1-12

 

<묵상하기>

 

*무엇이 복음에 합당한 것인가?*

바울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고
데살로니가로 갔었다.

그 고난과 능욕이란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주었다가 매를
맞고 옥에 갇혔으며,
끝내 빌립보에서 추방
당한 것을 말한다.

바울은 마게도니아로
가라는 주의 뜻에 따라
빌립보로 갔으나 그런 
고난을 당했다.

좌절하고 낙담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도
선교를 포기하지도 않았다.

도리어 빌립보에서의
고난과 능욕을 선한
싸움이라 여기고,
곧장 데살로니가로
내려가 복음을 전했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자신들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한 목적과 
방법은 하나님 안에서 
합당한 것이라 말한다.

어떻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께 합당한 
것일까?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않았다.

아첨이란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
하는 말을 가리킨다.

그래서 아첨은 탐심이나
탐욕과 같은 종류이다.

바울이 복음을 아첨의 
말로 전하지 않은 것은 
복음을 전하는 목적이 
사람을 기쁘게 하는데
있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복음을 전함으로써
사람에게 영광을 구하지
않았다.

복음을 통해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기를 바랐다.

이것이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합당한 태도이며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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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사도의
권위를 내세우기 보다는
마치 유모가 자녀를 
양육하듯 하였다.

즉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을 만큼 교인들을 
사랑하였으며, 그 사랑으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사랑은
그가 밤낮으로 일하며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로도
증명될 수 있다.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생계를 위해 교인들의
도움과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은 율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바울과 일행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자녀로, 자신들은
그들의 부모로 여겼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교인들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부모가 자녀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자녀가 부모에게
도움을 주는 것보다
합당하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유대교주의자들의
핍박으로 어려움에
있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3주 밖에 머물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충분한
복음의 양식을 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들이
전한 복음과 더불어
자신들이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어떻게
했는지를 기억하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행한 것이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의 합당한 
행위이므로 그것을 본받아 
살 것을 당부한 것이다.

 

 

<기도하기>

 

주님.

결과가 좋다고
모두 합당한 일이
아님을 기억하게 하소서.

특히 주의 뜻에 따라
사는데 있어서는
더욱 그러함을 
잊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뜻에 합당한 
방법과 과정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소서. 

결과에만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게 하소서.

합당한 방법과
과정을 위해 더욱
고민하게 하소서.

아멘!

 

  * 두란노 출판사 발행 생명의 삶 본문 묵상을 올리는 블로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