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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요한계시록

처음 사랑을 잃은 자와 실상은 부요한 자

by 운석57 2024. 11. 20.

2024.11.20(수) 큐티: 요한계시록 2:1-11

 

<묵상하기>

 

*처음 사랑을 잃은 자와 실상은 부요한 자*

하나님이 요한에게
편지를 전하라고
하신 첫 번째 교회는
에베소 교회였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이다.

바울은 3 년을 에베소에
머물면서 교회를 섬기는
한편, 두란노 서원을 세워
성도들을 가르치는데
전념했었다.

바울이 순교한 후,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가 순교했으며, 이후 
사도 요한이 지도자로 
섬기다가 밧모섬에 
유배되었다고 한다. 

그 에베소 교회를 향해
예수님은 "내가 안다!"
하고 말씀을 시작하셨다.

헬라어나 영어 성경에서는
"내가 안다"로 문장이
시작한다고 한다.

그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내가 다 안다!"하고
위로의 말씀을 
건네신 것이다.

무엇 때문에 에베소 
교회는 그토록 고통과
어려움을 당한 것일까?

거짓 사도들과 니골라당의
거짓 가르침으로 교회의
분열과 갈등이 계속되었었다.

거짓 사도들은 율법주의를
심으려 하였을 것이다.

한편, 니골라당은 안디옥
교회에서 사도 바울과 함께
섬기던 일곱 집사 중 하나인
니골라로부터 비롯된 이단이다.

니골라당은 구원을 영혼과
육체의 구원으로 이분화하여, 
육체적 범죄가 영혼 구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교리를 내세웠다.

지금의 구원파처럼
이미 구워받았으니, 
육체적으로 죄를 짓고
살아도 더 이상 구원에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다.

에베소 교회는 그러한
불의한 이단 사상들과
치열하게 싸워 승리하였다.

그 과정에서 에베소 교회가
얼마나 수고하고 인내하며
고통을 받았는지를 예수님이
다 아신다는 위로의 말씀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에베소 교회는 사랑을
버리게 되었다.

예수님이 그것을 
지적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에게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하셨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가
예수님에 대한 첫 사랑의
기억을 버렸다고 지적하신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책망은
그러한 의미 보다는,
처음에 에베소 교회가
세워지는데 있어 근간이
되었던 사랑을 잃어버렸음을
지적하는 의미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수님이 성도들에게 주신
새로운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였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는
사랑으로 교회를 세웠고
사랑으로 교회를 섬겼다.

즉 성도들 사이의 "형제
사랑"이 교회의 
근간이었다.

그러나 성도들 사이에 
거짓 사도와 니골라당을 
시험하여 밝히고 추방하는
과정 속에서 교인들 사이의
형제 사랑이 식어갔던 
것이다.

그저 냉랭함 만이 
남았다.

그들이 형제 사랑에
관한 한 저 높은 곳에
있었는데, 지금은
바닥으로 추락한
상태라는 의미이다.

그러니 자신들이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데
있어 얼마나 높은 곳에
있었는지를 돌아보고
회개하라고 말씀하셨다.

만약 돌이키지 않는다면,
에베소 교회를 촛대를
옮기겠다고 경고하셨다.

물론 이단 사상이 
교회를 잠식해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이단 사상이라는
벼룩 때문에 사랑의
초간 삼간을 모두
태우지 말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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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나는 에베소에서
70-80 킬로 떨어진
무역으로 번창하던
도시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부를 지키고자
로마에 앞장서서
충성하였다.

그 외 서머나에는
기독교를 반대하는 강성 
골수 유대주의자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서머나 교인들은
강성 유대주의자들의
박해에 시달리는 한편,
로마에 충성을 다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러
사회 및 경제 활동에서
소외되었다.

그래서 도시가 
부유해질수록,
성도들은 더욱 
가난해졌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궁핍한 너희들이
실상을 부요한 자라
위로하셨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의
환난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장차 큰 고난을
받을 것인데,
두려워하지 말고
잘 이기라고 말씀하셨다.

그 고난이란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 중
일부가 옥에 갇히거나
순교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말씀이 서머나 교회
성도들에게 위로가 
되었을까?

궁핍함을 이기고
살아왔는데, 이제
순교의 환난을
견디라고 하신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예수님이
서머나 교회에
자신을 소개하실 때,
처음이요 마지막이며,
죽었다가 살아난 이라고
강조하셨나 보다.

처음이며 마지막인
예수님에 비하면, 
그들이 받을 환난의
기간은 매우 짧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말씀이다.

또한 예수님 자신이
죽었다가 살아나셨으므로
그들이 겪을 박해와 순교의
고통도 다 알고 있으시다는
사실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모든 환난을 이긴 
사람에게는 둘째 사망이 
없다고 하셨다.

사람은 모두 첫번째 
사망의 길을 간다.

순교가 아니라도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성도들에게
생명의 관과 생명 나무의
열매를 주실 때, 그것을
받은 사람에게는
둘째 사망이 없다.

영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의 관과
생명 나무 열매를
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둘째 사망이 있다.

그리고 그 둘째 사망은
영원한 사망이다.

 

 

<기도하기>

 

주님.

세상과 싸워 이기게
하소서.

그러나 세상과 싸워
이기겠다고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소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아
궁핍한 자가 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왜냐하면 성도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며,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 두란노 출판사 발행 생명의 삶 본문 묵상을 올리는 블로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