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4(화) 큐티: 요한복음 4:43-54
<묵상하기>
*두 번째 표적*
사마리아에서 이틀을
유하신 후, 예수님은
원래의 목적지였던
갈릴리로 가셨다.
예수님은 가시면서
선지자는 고향에서
존중받지 못한다고
안타까워 하셨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경우도 자신의 고향
아나돗에서 존중받지
못했다.
오히려 미움을 받고
살해 위협을 당했다.
그런데 갈릴리에 도착해
보니 갈릴리인들이
예수님을 환영하며
영접하였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님이 거기에
행하신 모든 일을 보았던
것이다.
성전을 정화하신 것,
모든 병자를 고치신 것
등을 목격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선지자가 고향에서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을까?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하고 영접하는 이유가
이적을 본 때문인 것을
간파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영접은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었다.
그 뿐 아니라, 다른 복음서에
따르면 실제적으로 예수님은
고향에서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셨고, 죽음의 위협을
겪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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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첫 번째 표적을
행하신 가나로 가셨다.
그리고 가나에서
두 번째 표적을
행하셨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표적 (sign)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하였다.
기적, 이적, 표적은
모두 초자연적인 일을
행하신 것을 가리킨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그러나 기적과 이적은
상호교차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반면, 표적은
이들과 구별되는
용어이다.
표적은 기적 또는 이적과
달리 특별한 목적을
위해 초자연적인 일을
행하시는 것을 가리킨다.
즉 표적은 어떤 초자연적인
일을 행하셨는데, 그 일을
하신 목적이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이 생기도록,
또는 믿음이 강해지도록
하기 위해서 일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예수님이 가나에
가셨을 때, 왕의
신하 한 사람이
아들을 고쳐달라고
가버나움으로부터
찾아왔다.
여기서 왕이란
헤롯 안티파스를
의미한다.
즉 세례 요한을
죽인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의 고관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다.
그는 예수님께 가버나움으로
오셔서 자신의 아들을
고쳐달라고 청하였다.
그 때, 예수님은 고관을
책망하는 듯한 말씀을
하셨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이는 고관에 대한
책망일 수 있으나,
고향을 비롯한 갈릴리
사람 전체에 대한
책망이기도 하다.
기적과 이적만 따르고
도무지 믿음을 가지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책망한 것이다.
예수님의 책망하는
말씀에도 그 고관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거듭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하고
간구하였다.
귀신 들린 딸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의 냉정한
말씀, 즉 자식에게 줄
떡을 개에게 주지
않는다는 말씀을
듣고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수로보니게
여인과 같은 모습이다.
예수님은 그러한 엄마와
아버지에게 긍휼함을
보이셨다.
자식을 살리는 기도는
그것이 육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언제까지라도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기도가
믿음의 기도라 한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평안하거나, 고난이
있거나 끊임 없이
계속하고, 지속하는
기도가 믿음의
기도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이
다시 오실 때, 그렇게
믿음의 기도를 하는
사람을 볼 수 있을까
한탄하셨다.
여하튼 예수님은 왕의
고관이 포기하지 않고
드리는 간구에
응답하셨다.
그래서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셨다.
예수님의 이적을 바라고
찾아왔던 왕의 고관은
예수님과 나눈 길지
않은 대화를 통해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
변모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그 말씀을 믿고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자신을
만나러 급히 오고 있는
종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아들이 살았다는
기쁜 소식을 들고
달려오는 중이었다.
종들에 의하면 아들은
서서히 나은 것이 아니라.
한 순간 갑자기 나았다.
그 시각은 예수님이
고관에게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신 오후
1 시 경이었다.
가버나움은 가나에서
35 킬로 떨어진 곳이다.
고관은 예수님을 말씀을
듣고 가버나움을 향해
가다가, 밤이 된 시점에
종들을 만났다.
유대인은 저녁 6시를
하루의 시작으로 여긴다.
그래서 종들이 어제
일곱 시라 답한 것이다.
현재 우리 시간으로 말하면,
고관의 아들이 나은 시각은
같은 날 오후 1 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시각이었다.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그 고관은 물론 그의
온 집안이 믿음을
갖게 되었다.
<기도하기>
주님은 자식을 위한
간구를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었던 왕의
고관의 간구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표적을 보이사,
병을 고치시고 그와
그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저희의 자식을 위한
간절한 기도도 긍휼히
여겨 주소서.
저희로 어떤 경우에도
기도를 멈추지 않는
믿음의 기도자가
되게 하소서.
저희를 기도의
용사로 삼아주소서.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수 많은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 나라를
향한 주님의 선한 뜻을
이루소서.
아멘!
* 두란노 출판사 발행 생명의 삶 본문 묵상을 올리는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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