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5(수) 큐티: 요한복음 5:1-18
<묵상하기>
*38년 동안의 광야의 삶*
왕의 아들을 고치신 후,
시간이 흘렀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사도 요한은 어떤
절기인지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예수님은 양문 옆에
있는 베데스다
못을 지나셨다.
예루살렘 성에는
10 개의 문이 있었는데,
그 중 양문은 성전에서
매우 가까운 문이다.
제물로 드려질 양들이
지나는 문이라서
양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리고 양문 옆에는
넓은 공터가 있었는데,
그곳에 베데스다라는
못이 있었다.
그곳에는 못을 따라
행각이 지어져 있어서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매일 그곳에
나와 있던 사람들은
그곳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은 그 곳에 병을
고치기 위해 나왔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요동치게 하는데, 그 때
가장 먼저 그 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병이 낫게 된다고
믿었다.
베데스타 못은
간헐천이었던
것이다.
베데스다 못 가에
모여있던 사람들
가운데 38년 된
병자가 있었다.
그는 38년 동안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 사람이다.
그는 베데스다 못가에
자리를 펴고 못의 물이
움직인 후 가장 먼저
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못의 물만
바라보고 있었다.
예수님은 38년 된
그 병자를 보셨다.
38년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바란
광야까지 가는데
2 년이 걸렸다.
그리고 이후 38년 동안
광야에서 유랑하며
살았다.
즉 38년은 광야에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의
삶을 의미한다.
38년 동안 광야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병자에게
예수님이 다가가서
물으셨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러자 그 병자는 대답했다.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소경 바디메오는 예수님이
"내가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 하고 물으셨을 때,
"주여! 내가 보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자신이 구해야 할 바를
정확히 구하였다.
바디메오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38 년 된 병자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이
마땅히 구해야
할 바도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를 고쳐주셨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셨다.
그래서 그 사람은
일어나 자기의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그런데 그 날은
안식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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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대적하는
유대인들은 38 년 된
병자가 걷게 된 것에
관심이 없었다.
오직 그가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
유대인들이 안식일
율법에다 확장하여
붙인 39 번째 조항에
따르면,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개인 공간으로
물건을 옮겨서는 안된다.
유대인들이 병이 나은
사람에게 안식일을
범한 것을 비난하자,
그는 자신을 고쳐주신
분이 자리를 들고 가라
했다고 변명하였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그가 누구인지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 병자는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 사람 역시 자신이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여 병을 고쳐주신
분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후에 성전에서
그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그 때 예수님은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는 그의 병이 죄 때문에
생긴 것임을 암시하시는
말씀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과 아무 관계 없이
사는 삶이 바로 죄이므로
앞으로는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를 나누는
삶을 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자신의 병을 고친 사람이
예수님이신 것을 알게 된
그 병자는 유대인들에게
가서 담대하게 그가
예수이심을 밝혔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박해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인 아버지가
안식일에도 일하시므로
나도 일한다 하고 당당히
말씀하셨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계기로 더욱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결의를 다지게 된다.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 선포하셨기
때문이다.
<기도하기>
주님.
38년 된 병자는
병에 몸이 묶여
38년 동안 광야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영적으로도
어두워서 자기 앞에
오신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주께 마땅히
구해야 할 바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긍휼히 여기셔서
고쳐주셨습니다.
저희도 이 광야와 같은
삶에서 구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영적으로 어두워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주께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저희를 위해
구하시는 줄을 믿습니다.
아멘!
* 두란노 출판사 발행 생명의 삶 본문 묵상을 올리는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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