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8(토) 큐티: 요한복음 5:39-47
<묵상하기>
*믿지도 않는 것을 일생을 바쳐 연구하는 사람들*
하나님은 신명기에서
"이스라엘아 들으라!"
하시고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셨다
(신 6: 5).
이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막연할 수 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지 막연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이러한 생각을 아시고,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앉으나, 서나,
누으나, 말씀을
생각하고 묵상하며,
자식들에게도
가르치라 하셨다
(신 6: 6-9).
즉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말씀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알려주신 것이다.
말씀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온 마음을 다해
말씀을 사모하고
사랑한다면, 당연히
예수님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성경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 마음을 다해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한
그 많은 선지자들, 예컨대
아브라함, 모세, 다윗,
이사야, 예레미야를
포함한 많은 선지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예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에게 대적하는
사두개인, 바리새인을
비롯한 유대인들에게
그것을 지적하셨다.
너희들이 성경을
연구한다고 그렇게
자랑하고 떠들면서
어찌 모든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예수님을 깨닫지
못할 수 있느냐
반문하신 것이다.
그 유대인들이 그동안
성경을 연구한 것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율법과 말씀을
독점하여 사회적 계층을
나누고, 그것을 누리며
영광을 취해왔다.
즉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않고, 서로 영광을
취해왔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도
영접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이름으로
그들을 현혹한다면,
그들은 그를 영접하고
숭배했을 것이다.
서로 영광을 주고
받으며 그 영광에
취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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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이렇게
자신들의 영광에
취해있는 대적들을
향해 그들을 고발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라,
그들이 그토록 자랑하는
모세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모세 또한
예수님에 대해
예언했기 때문이다.
모세는 신명기 18장
15절에서 하나님이
너희 형제들 가운데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니 그의 말에
순종하라 기록하였다.
그리고 모세는 18절에서
다시 같은 말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그 선지자의
입에 하나님의 말을 그의
입에 둘 것이니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는 것을
무리에게 다 말할 것이라
기록하였다.
만약 사두개인이 그들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모세오경을 진정 열심히
연구했다면, 모세가 가리키는
이 선지자가 예수이심을
깨달아야 한다.
만약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의 주장처럼
모든 성경을 그토록
열심히 연구했다면,
모든 성경이 가리키는
메시아가 예수님이심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열심히 연구한
말씀들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러니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예수님을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이다.
<기도하기>
주님.
세상이 주는 영광과
복락을 위해 말씀을
읽고 연구하지 않게
하소서.
저희에게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소서.
주의 말씀이 송이꿀처럼
단 것이 되게 하소서.
말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과 사랑이
깊어지게 하소서.
말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으로 뜨거운
눈물이 흐르게 하소서.
아멘!
* 두란노 출판사 발행 생명의 삶 본문 묵상을 올리는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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