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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묵상

바디메오를 아십니까?

by 운석57 2019. 2. 9.

 말씀 강해

제목: 예수 알아가기, 예수 닮아가기

설교자: 이 찬 수 목사님

성경: 마가복음 10장 46~52절

 

"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

 

여러분은 열망이 있으십니까?

이 열망을 이룰 수만 있다면 조금 모독적인 말을 들어도 상관없고

조금 상처받는 말을 들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오늘 바디메오라는 시각장애자가 바로 그런 열망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바디메오는 앞을 보지 못한 시각장애자이며

구걸해야 하는 처지에 있었지만 부러운 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바디메오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가 행복한 이유는 첫째 삶의 대한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디메오는 툭 건들면 바로 튀어나오는 마음의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디메오가 처음부터 이러한 꿈과 열정을 가졌던 것은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 그는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듣고...’ 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여느 맹인 구걸자들과 마찬가지로 동전을 던져주는 사람을 기다리며

그냥 길가에 무기력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사렛 예수라는 바로 그 말이 그를 의욕과 활력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교회에 앉아 있다고 모두 예수님이 삶의 의지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의미로 다가올 때 삶의 의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를 살아나가는 법을 가르쳐주십니다.

모세를 리더로 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시고

가나안 앞에 꼭 젖과 꿀이 흐르는 이라는 말을 붙이십니다.

꿈과 목표를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바디메오는 그냥 목표를 가진 것이 아니라 그 목표를 이루어주실 수 있는 분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는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부르는 분명한 고백입니다.

바디메오는 마가복음 전체에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주변에서 그렇게 조용히 하라고 나무라는데도

더욱 소리를 지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알았고

그 분만이 자신을 고쳐주실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세째 바디메오는 치유를 사명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마가복음 8장에도 치유함을 받는 맹인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맹인과 오늘 바디메오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8장의 시각장애인은 '눈이 밝아지니...'로 끝납니다.

그러나 바디메오는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로 끝납니다.

그가 따른 길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가시는 길입니다.

그 길을 따랐다는 것은 바디메오가 고난의 길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꿈 너머 꿈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바디메오는 꿈 너머 꿈을 이룬 사람입니다.

즉 눈을 뜨겠다는 꿈이 이루어졌는데 그 꿈을 이루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꿈 너머 꿈인 그리스도가 주신 사명의 길을 갔음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