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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사사기

사람은 어디까지 나빠질 수 있을까?

by 운석57 2021. 9. 15.

2021.09.15(수) 큐티: 사사기 19:16-30

 

<묵상하기>

 

노숙할 처지에 놓였던
레위인의 일행은
한 노인의 도움으로
노숙을 피하게 된다.

그런데 그 노인은
기브아 사람이 아니고
에브라임 산지 사람이었다.

이는 기브아에 의인이
한 명도 없음을
암시하는 구절이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 
나그네를 귀히 
대접하라고 하셨다.

이스라엘도 애급에서
나그네였으므로...

그런데 기브아 사람들에게는
그 율법 조차 의미가 없었다.

노인은 레위인을 집으로
데려가서 잘 대접한다.

아마도 레위인이 자신들은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말한 것이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이 제사장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렵게 묵을 곳을
찾은 레위인 일행에게
다시 고난이 찾아온다.

기브아의 불량배들이 
그 집으로 몰려와서 
남색을 위해 레위인을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린 것이다. 

여기서 불량배라는 단어는
바알 숭배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기브아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성읍임에도
바알을 숭배할 뿐 아니라
동성애가 널리 행해지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기브아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전의 모습 
그대로였던 것이다.

이러한 동성애자들의 행패에
노인의 대응이 놀랍다.

자신의 딸과 레위인의
첩을 내주겠다고 한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레위인의 행동이다.

첩을 밖으로 끌어내고는
문을 잠가 버린 것이다.

결국 그 레위인의 첩은
밤새 능욕을 당한 후,
그 노인의 집 앞에서 
죽음을 맞았다.

아무리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산다고 해도
무법천지가 따로 없다.

자기 소견에 따라 산다는 
의미는 인간 중심, 또는 
본성 중심으로 산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사람이 그렇게 
살게 되면 시대가 달라도
가는 길은 동일할 수 밖에 없다.

소돔과 고모라가 걸어간 길,
그리고 기브아가 걸어간 길.

-----------------------------

레위인은 첩을 그렇게 
내보내고도 걱정 조차
하지 않았나 보다.

밤새 문 밖 동향을 
살피지도 않았던 것 같다.

아침이 되어 출발하기 위해
대문을 열고서야 문 앞에 있는
첩의 시체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레위인은 어떠한 애도의
기미 조차 없이, 당연한 일을
당했다는 듯이 담담하게 
첩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 시대에는 여자들에게 
이러한 범죄가 행해지던 일이
너무도 흔했던 것이다.

애초에 레위인은 첩을
찾으러 가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애초에 문란한 
생활을 한 첩을 탓해야 하나?

아니면 자꾸 사위를 잡아서
일찍 돌아가지 못하게 한
그 장인을 탓해야 하나?

자꾸 미적거리면서
출발을 늦추더니,
정작 출발을 늦춰야 하는
시점에 단호하게 출발을 
결정한 그 레위인의 
우유부단함과 결정력 장애를 
탓해야 하나?

차라리 도망간 첩을 
포기하고 살았다면 
이러한 비극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레위인은 그 정욕조차 
포기하기 싫었던 것이다.

그런데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집에 돌아가서 레위인이
자행한 일이다.

첩의 시체를 12 덩이로 
나누어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보낸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어디까지 나빠질 수 있을까?

하나님을 떠난 나는 과연
어디까지 나빠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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