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6(목) 큐티: 욥기 35:1-16
<묵상하기>
엘리후 역시 왜곡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욥이 하나님 보다
자신이 더 의로움을
주장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욥은 그러한
말을 한 바가 없다.
욥은 다만 자신이
힘껏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의롭게 살아왔는데
왜 이런 고난과 시련이
왔는지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을 뿐이다.
엘리후는 우리의 죄가
하나님께 무슨 영향을
줄 수 있는가 반문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무리
의롭다 한들 그것이 하나님께
무슨 유익이 있는가 묻는다.
그 말은 욥의 의로움은
그의 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이다.
즉 욥이 하나님 앞에
의로움을 내세우는 것은
그처럼 헛된 일이라는 말이다.
엘리후의 말대로
우리의 죄나 의로움이
하나님께 아무 것도 아닐까?
우리의 죄는 하나님을
아프시게 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은 죄로 인해
파멸할 우리의 영혼을
너무도 안타까워 하시고
아파하신다.
그래서 독생자를
내어주신 것이 아닌가?
우리의 의로움은 어떨까?
그것도 하나님께
아무런 의미가 없을까?
하나님은 우리의 의로움으로
인해 기뻐하신다.
자랑하고 싶어 하신다.
그래서 욥의 의로움을
사탄에게 자랑하신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의 죄와
의로움은 사람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도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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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후는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은
부르짖는 사람이 교만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간구가
헛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물론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의 간구나, 헛된
간구에 응답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부르짖음에 즉시 응답하신다.
우리는 이것만 기억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간구를 때를 기다려
응답하시기도 한다.
또는 우리에게 응답하시되,
우리가 구한 것이 아닌
우리에게 필요한 것으로
응답하시기도 한다.
우리는 마땅히 구할 바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혹은 우리가 구한 것이 아니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아닌,
하나님 보시기에 최선의
것으로 응답하여 주신다.
이럴 경우 우리는 응답받지
못했다고 여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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