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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예레미야

그가 형통하였느니라

by 운석57 2019. 6. 30.

2019년 06월 29일 큐티: 예레미야 22:10-19

 

<묵상하기>

 

요시아 왕은 유다를 정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왕이다.


이방 신당을 모두 없애고

하나님의 공의를 지키려 애쓰던 왕이다.

그런 왕이 전투에 나갔다가 전사하니
백성들이 그를 애도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위해 울지 말고
애굽에 잡혀가 있는 살룸왕을 위해 울라고 하신다.

요시아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았으므로
육체는 죽었으나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살룸은 짧은 집권 기간 동안
악행만을 저지르다 애굽에 잡혀간 것이므로
그의 죽음은 영원한 사망이다.

요시아 왕에 대한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을 믿고 따르던 사람이
왜 이리 허망한 죽게 되었을까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죽음이 허망한 것이 아니라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죽음은 불행, 삶은 다행이라는 공식에 매달려 있으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음을
일깨워주시는 말씀이다.

살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여호야김은

하나님의 공의를 저버리고

철저히 자기 중심적으로 산 인물이다.

자기를 위해 큰 집을 짓고
그 집을 화려하게 치장하였다.


그렇게 탐욕을 추구하다 보니
압박과 포악을 저지르며
무고한 피를 흘리는 통치를 하였다.

하나님은 요시아 왕은 정의와 공의를
실천함으로 형통함을 얻었으나
여호야김은 예루살렘 문 밖으로 던져져
나귀와 같이 매장되는 죽음을
맞을 것이라 경고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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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님.

요시아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며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로 통치하려고 애썼으나
전투에서 허망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삶이 형통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삶에서 모든 일이 술 술 잘 풀리고
막힘 없이 해결되어 두루 두루 안락하고
편안한 것이 형통함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적어도 형통한 사람이라면 허망한 죽음만큼은
당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안에서의 형통함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의 공의를 사모하는 것,
그것을 하나님은 형통한 삶이라 평가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삶도 형통한 것으로 평가받게 하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