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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누가복음

새 가죽부대에 담긴 "복!"

by 운석57 2022. 1. 21.

2022.01.21(금) 큐티: 누가복음 6:12-26

 

<묵상하기>

 

먼저 베드로, 야고보, 요한,
레위 등을 제자로 부르신
예수님은 나머지 제자들도
택하셔서 12명을 채우셨다.

앞서의 제자를 부르실 때는
그 자리에서 바로 부르셨다.

그런데 나머지 제자를 
부르실 때는 산에 오르셔서 
밤새 기도하셨다.

왜 그러셨을까?

그 이유를 가롯 유다를
제자로 택하는 것 
때문이었을 것이라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12 제자가 
선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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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셔서 평지에서 
가르침을 주셨다.

오늘 말씀은 마태복음의
산상수훈과 대비하여
평지수훈이라 부른다.

산상수훈에서는 8가지
복을 말씀하셨으나,
평지수훈에서는 그 중
4가지의 복을 설명하시면서
이에 대비되는 4가지 화를 
같이 설명하셨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에 대한 새로운 질서,
새로운 관점을 말씀하셨다.

즉 금식, 기도, 안식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말씀하신다.

"복"이란 무엇인가?

욥기에서는 시종일관
"복"은 재물이 풍족하며,
심신에 병이 없으며,
자손이 다복하고
가족이 화목하며,
장수를 누리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 대한 개념이다.

물론 이는 유대민족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이 복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생각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은
그런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셨다.

가난한 것, 주리는 것, 우는 것,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박해를 받는 것이 복이라고 
말씀하셨다.

반면, 부유한 것, 배부른 것, 
웃는 것, 칭만받는 것이 
화라고 하셨다.

가난한 것이 왜 복인가?

당시 예수님 앞에는
거의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당시 가난한 사람은 
물질이 가난할 뿐아니라,
사회로부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하루 하루를
생존하기 위해 의지할 것은
오로지 하나님 뿐이었다.

그만큼 하나님이 절박한
사람들이었다는 의미이다.

가난하여 그렇게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을 산상수훈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라 칭하였다.

그리고 바로 이런 상태를 
"복!"이라 하였다.

주린 자란 음식에
주린 가난한 자를
의미할 수도 있으나, 
산상수훈에 따르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을 가리킨다.

의에 주려서 의를
갈망하고 갈구하는
것, 그것이 복된 
상태라는 의미이다.

산상수훈에 따르면 
우는 자란 슬픈 사람이라는 
의미 보다는 죄로 인해 
애통해하는 사람을 말한다.

자기 죄로 인해 
한없이 애통해 하는 것, 
바로 그것이 복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미움을 받고 핍박당하는 것,
그것이 복이라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화는 무엇인가?

세상이 주는 것으로 
포만감을 느끼는 상태,
지금 세상의 것으로 배가 불러
영혼의 주림이 없는 상태,
자신의 죄에 무뎌져서 
죄를 짓고도 애통함이 없는 상태,
세상과의 타협으로 화평한 상태 
등이 모두 "화!"라고 하셨다.

 

<기도하기>

 

주님.

항상 심령이 가난하여
주께 주리는 자가 되게 하소서.

세상 것으로 포만감도
갈급함도 느끼지 않게 도우소서.

세상에 대해 담담하게 
하여 주소서.

죄에 대해 애통하게 하사
작은 죄에도 무뎌지지 
않게 하소서.

그러나 죄책감 속에 
매몰되지 않게 하소서. 

세상과 화목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과
화목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세상의 손을 놓고
하나님의 손을 잡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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