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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누가복음

누가 탕자인가?

by 운석57 2022. 2. 24.

2022.02.24(목) 큐티: 누가복음 15:11-32

 

 

<묵상하기>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비유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명 탕자의 비유,
그러나 이 비유의 
주인공은 탕자가 아니라
아버지라고 한다.

탕자의 비유는 잃어버린
양과 잃어버린 드라크마와
같은 맥락의 비유이다.

그러나 두 비유에 비해
스토리가 더 단단하고
깊이가 있다.

비유 속의 탕자는
작은 아들이다.

유대 관습으로 볼 때,
작은 아들은 항상
큰 아들의 그늘 속에
가려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의 삶도 
그럴 것이라 판단한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자기 몫의 재산을
미리 달라고 하였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이러한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상속은 반드시 아버지가
죽은 다음에 이루어지는
것이며, 상속 재산을
미리 달라고 하는 것은
아버지가 죽기를 바란다는
의미의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모에게 이러한
요구를 하는 아들이
있다면 이웃들이
그를 돌로 쳐도 
된다고 한다.

그런데 작은 아들은 
상속 재산을 요구했고
아버지는 그것을 들어주었다.

재산을 미리 받은 아들은 
당연히 고향에서
살 수 없었다.

그래서 재산을 모두 팔아
다른 나라로 떠나 버렸다.

이것 또한 유대 관습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라고 한다.

아들에게 상속되는
재산은 땅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은 상속받은
땅을 쉽게 처분할 수 없다.

그런데도 작은 아들은 
땅을 모두 팔아서 
현금화한 후, 집을 
떠나 버렸다.

그리고는 방탕한 
삶을 살았고 당연히
얼마 못가서 
무일푼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돼지치기를 
하게 되었다.

아버지, 즉 하나님을 
떠난 삶은 돼지우리와 
같음을 의미한다.

그러다가 그는 
정신을 차려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였다.

아버지 집에 가서
아들이 아닌 일꾼으로
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아버지는 거리가 먼데도
돌아오는 사람이 
아들 임을 알아보았다.

아버지는 매일 동구 밖에 
나와서 아들을 
기다렸던 것이다.

혹시 돌아오는 아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당할까 걱정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탕자
아들을 맞아들여서
아들로서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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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지금까지 이야기 속에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큰아들의 반응이다.

작은 아들이 떠날 때,
이미 상속은 끝난 것이므로
현재의 재산은 모두
큰 아들의 것이다.

그런데도 큰 아들은
그동안 자신이 열심히
일한 것을 아버지에게
종노릇한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잔치 한번 
열지 못하고, 일만 
한 것을 몹시 억울해 했다.

아버지는 큰 아들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은 모두 네 것이라
달래보지만 큰 아들이 
그 말을 기꺼이 받아
들였을 것 같지 않다.

큰 아들의 역시
작은 아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시선이 재산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이 그의 복인데,
그는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재산이 그의
복인줄 알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작은 아들을 위해
쓰는 옷과 반지, 
송아지에 그렇게 
분개한 것이다.

재산을 가지고
집을 떠난 아들만
탕자가 아니다.

집에 남아 있었지만
아버지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고 아버지에게
받게 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던 큰 아들도 탕자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하나님 
앞에 탕자이다.

집을 떠났든, 
남아 있든 상관없이...

그 탕자를 하나님은 
매일, 매 순간 기다리신다.

진정으로 돌이키기를
바라시면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복인 것을 깨닫기 바라시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