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7(금) 큐티: 고린도전서 12:1-11
<묵상하기>
오랫동안 내 안에 성령이
계신가 하고 의문을
가졌었다.
물론 예전에는 성령이
내 안에 계신가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말씀에 관심을
가지고 조금 더 집중하기
시작하니 "성령"이라는
단어가 크게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내 안에도 성령이
계실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성령 체험을 한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은사를 구하는
마음을 가져본 적도 없었고,
내게 특별한 은사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상을 통해
어떤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중에 오늘 3절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예수를 나의 주
그리스도라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그 안에
성령이 계신다"
라는 설명을 하셨다.
그래서 성령의 임재하심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되었다.
나는 믿지 않는 남편을
만나서 자식들도
믿음 안에게 키우지 못했다.
변명의 여지 없이, 나도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해 확신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을
신앙의 길로 이끌지
못했다.
그래서 뒤늦게 나마
결단을 내리고 먼저
남편과 성경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도 그런 시도를
했었지만, 하다 보면
감정이 상해서, 이러다가
남편을 미워하게 될 것
같아, 중간에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그나마 남편이 나와의
성경 공부를 마다하지
않은 것은, 중고등학교를
기독교 학교를 다녀서
성경은 공부하는 것이다
라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미션스쿨이
중요한 것 같다.
성경공부를 시작한 후
수년간 남편은
별 변화가 없었다.
그러다가 예수를
영접하겠다고
자신이 결심을 하였다.
그냥 나의 노력이 가상해서,
그 노력이 불쌍해서
영접해준다고 말했다.
그래도 나는 감지덕지했다.
영접한다고 자신의 말로
고백했으니 성령이 알아서
이끌어 주시겠지 생각했다.
그리고도 오랫동안 또
하나님은 믿으나 예수님은
확신이 들지 않는다고
말하곤 하였다.
예수님이 보이신
이적들에 대해서도
믿는 마음 보다는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합리화하곤 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 뿐 아니라
남편에게도 걸림돌이었다.
남편도 그 돌에
걸려 넘어졌다.
가끔 남편에게 기도를
하도록 요청하곤 했는데,
오랫동안 기도의 말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를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하고
기도를 마치곤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지적하고 싶은 유혹을 넘어,
왜 변화하지 않을까
화가 나기도 했으나,
인내했다.
최근 바울의 서신서들을
함께 읽었다.
그리고는 어느결인가
남편의 기도가 바뀌어
있음을 발견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를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성령이 그 안에
계심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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