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1917 그가 형통하였느니라 2019년 06월 29일 큐티: 예레미야 22:10-19 요시아 왕은 유다를 정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왕이다. 이방 신당을 모두 없애고 하나님의 공의를 지키려 애쓰던 왕이다. 그런 왕이 전투에 나갔다가 전사하니 백성들이 그를 애도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위해 울지 말고 애굽에 잡혀가 있는 살룸왕을 위해 울라고 하신다. 요시아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았으므로 육체는 죽었으나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살룸은 짧은 집권 기간 동안 악행만을 저지르다 애굽에 잡혀간 것이므로 그의 죽음은 영원한 사망이다. 요시아 왕에 대한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을 믿고 따르던 사람이 왜 이리 허망한 죽게 되었을까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죽음이 허망한 것이 아니라 보호하는 것이라.. 2019. 6. 30. 백향목일지라도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2019년 06월 28일 큐티: 예레미야 22: 1~9절 유다의 왕들이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찬양하고 경외하였더라면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사모하고 약한자들이 압박당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만들어 나갔을 것이고 그리하여 이방인, 고아, 과부가 모두 평안히 사는 사회가 되었으리라.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 이방 신을 섬겼으므로 하나님의 공의가 무너졌고 유다는 약한자, 무고한 자들의 피를 흘리고 탈취와 압박이 있는 사회가 되었다. 하나님은 유다의 왕들이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기를, 그리함으로써 다윗의 영광이 다시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게 되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실 것을 아시므로 유다 왕의 가문 또한 통치할 땅도 없고, 백성도 없게 될 것이라 선포.. 2019. 6. 30. 기도의 문이 막힌자 2019년 06월 26일 큐티: 예레미야 21: 1~7절 바벨론이 침공할 위험이 실제적으로 닥치니 그때서야 비로서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를 돌아본다. 예레미야에게 사람들을 보내 하나님께 기도드릴 것을 요청한다. 그런데 사신으로 온 사람이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예레미야를 때리고 옥에 가두었던 바로 그 사람 바스훌이다. 하나님께서 이름까지 바꿔주신 자가 이전에 자신이 저지른 악행은 아랑곳하지 않고 왕의 말을 전하러 온 것이다. 전에 침 뱉고 떠난 우물을 물을 구하겠다고 다시 찾은 형색이다. 제사장이라는 자가 다른 사람에게 기도를 요청하는 것도 그렇고 참 뻔뻔하기 이를데 없다. 아마도 바스훌은 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기도의 문이 막혀 있었을 수도 있다. 마치 목사의 직분에 있는 사람이 기도를.. 2019. 6. 30. 거짓 예언을 믿는 자는 거짓 예언자의 친구라 불린다 2019년 06월 24일 큐티: 예레미야 20:1-6 오늘 말씀에는 유다 백성들에게 평안할 것이다, 평안할 것이다 하고 거짓 평안을 말하던 제사장들의 수장이 등장한다. 성경에 이름까지 명시된 것으로 보아 그가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자리에 있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하는데도 가장 앞선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예레미야가 전하는 말씀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예레미야를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풀어준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에 대한 핍박이 성전 안에서 이루어짐을 본다. 하나님의 말씀을 구한다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들을 박해한다. 이러한 일이 기독교 역사에서 반복되어진 것 같다. 말씀을 구하는 자들의 뜻이 하늘 나라에 .. 2019. 6. 30. 이전 1 ··· 474 475 476 477 478 479 48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