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16(금) 큐티: 예레미야애가 5:1-14
<묵상하기>
*우리를 기억하시고...*
하나님은 방주에 있는
노아와 많은 들짐승,
그리고 가축들을
기억하시고 바람을
불어 물을 마르게 하셨다.
하나님은 불임으로
고통받는 라헬을
기억하시고 아기를
갖게 하셨다.
하나님은 애굽의 압제로
신음하는 이스라엘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구하셨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면,
구원이 일어난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실까?
물론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
어미가 젖먹이를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사 49: 15).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고,
간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기억하신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예레미야이기에,
하나님께 자신들의
처지를 기억해 주실 것을
간구하고 또 간구하고 있다.
지금 남은 자들의
처지가 어떠한가?
고아와 과부와
같은 처지이다.
즉 온 백성이 사회적
최약자 층으로
전락한 것이다.
식량을 구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고,
물과 땔감을 구하려면
거금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피부가
꺼멓게 변했다.
그들이 당하는 수치는
또 어떠한가?
부녀자들은 모두
욕 보임을 당하고,
저항하는 지도자들은
모두 처형되었으며,
장로들조차 천대의
대상이다.
모든 아이들과
청년들은 격한
노역에 동원되고,
노래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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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는 7 절에서
이러한 심판이 임한 것이
조상들이 범죄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상들이 범죄하고
지금 우리가 그 죄악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였다.
과연 그럴까?
분명 예레미야는
예레미아서 31 장에서
조상이 신포도를 먹어
후손의 이가 시리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에스겔 역시 아비가
신포도를 먹어 아들의
이가 시리다는 속담을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유다가 망한 것은
조상 만의 탓이 아니라,
자신들의 죄로 인한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7 절의 말씀은
조상의 죄로 인해
유다가 멸망을 당하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조상들의 범죄를 비판적인
사고 없이 그대로 수용한
후손들이 계속 같은 죄악을
저질렀으며, 그러한 죄로
인해 유다가 멸망하게
되었다는 자기 성찰적
탄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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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에는 반전이 없다.
애가는 슬픔으로
시작되어, 슬픔으로
끝나는, 슬픔 뿐인
노래이다.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 삶에도 반전이
그리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애가에서 조차
소망을 노래했듯이,
믿는 자는 애가 만이
새어 나오는 삶에서
그리스도의 소망을
보는 사람들이다.
<기도하기>
주님.
지금도 세상에는
삶 자체가 애가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자신들을 기억해
주시기 만을 간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 기도를
멈추지 않게 하소서.
애가와 같은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소망 위에
굳게 서 있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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