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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사도행전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by 운석57 2023. 7. 6.

2023.07.06(목) 큐티: 사도행전 8:2-13

 

<묵상하기>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스데반이 죽은 후,
어떤 사람들은 그를
장사 지내며 크게 울었다.

예수님이 죽으신 후,
아리마대 요셉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요구하여 
장사 지냈다.

성경은 이러한 아리마대 
요셉의 행동을 매우 
용기 있는 행동으로
평가했다.

그것은 유대교로부터
파문 당할 수 있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스데반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애도한 
사람들 역시 매우
용감한 사람들이다.

스데반도 예수님처럼 
유대교 지도자들의 
미움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이 기회에 초대 교회의
싹을 자르겠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그래서 교인을 색출하기
위해 가가호호 탐문하였고,
교인으로 밝혀지면 가차 없이 
옥에 가두었다.

사울 (바울)이 바로 
이 일에 앞장 섰던 
사람이다. 

바울은 스데반의 순교 이후
일어난 예루살렘 교회 
대 박해 사건의 주도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유대 
각지와 사마리아로
흩어졌다.

신도의 수가 2 만 명에
이르렀던 예루살렘
교회는 훼파되고,  
사도들과 소수의
사람들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유다 각지와 
사마리아로 간 사람들을
박해를 피해 도피한 
사람들이라 부르지 않았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흩어짐을 당한 
사람들이라 불렀다.

물론 이 사람들의 경우,
처음에는 자신들이
박해를 피해 도피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을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곧 복음을 
확장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자신들을 
각지로 흩으신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을 복음을 
위해 흩어진 사람이라 
부르며, 그 사명을
충실히 따랐다.

그 사람들 중에
빌립이 있었다.

누가는 이 빌립이 
사도 빌립인지, 
일곱 집사 중 하나로 
세워진 집사 빌립인지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이 빌립은
집사 빌립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성경은 후일 베드로와 
요한이 빌립의 사역을
확인한 것으로 기록하였다.

만약 이 사람이 사도
빌립이라면, 사도들이
빌립의 사역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확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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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빌립은 복음의
불모지라 할 수 있는
사마리아로 내려갔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라고 부르며
상종도 하지 않았다.

사마리아 쪽으로 
지나다니지도 않았다.

그러니 사마리아에는
복음이 거의 전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을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하셔서
친히 찾아가셨듯,
사마리아 사람들을
사랑하셨다.

사마리아에도 복음이
전해지기를 바라셨다.

그 일을 집사 빌립이 
시작하였던 것이다.

집사 빌립은 헬라파
유대인이기 때문에,
히브리 유대인에 비해
사마리아인들이 받아
들이기 쉬웠을 것이다.

빌립은 스데반처럼
성령이 충만하여, 말씀을
가르치는 능력이 있었으며,
기사와 이적을 행하는데도
탁월하였던 것 같다.

빌립의 이적을 보고
말씀을 들은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리고 사마리아에는
큰 기쁨이 있었다.

하나님은 큰 울음과 큰
박해 가운데 사마리아의
큰 기쁨을 이끌어 
내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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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 빌립을 따르는
사마리아인들 중에
마술사 시몬이 있었다.

마술사는 지금처럼 
오락을 위해 마술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방 종교의 술사를
의미한다.

모세에게 대적했던, 
애굽의 술사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술사 시몬은 빌립이
행하는 성령의 권능에
놀라서 세례를 받았다.

진실된 믿음에서
거듭난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
표적에 혹해서 받은
세례였던 것이다.

 

 

<기도하기>

 

주님.

예수님은 한 여인의 
영혼을 구하시기 위해, 
사마리아 우물가에
가셨습니다.

빌립은 성령의 힘으로
사마리아 성 전체가 
그 우물가가 되게
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갈급했던 수 많은
영혼들에게 복음의
생수를 부어주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큰 위기가
믿음의 큰 기회가 되며, 
큰 기쁨으로 맺어지게 
됨을 저희로 깨달아

알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