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가에 따라 사람은 위와 같이 3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말씀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의 표상으로 페니키아인을 제시하셨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에 의해 저주받아 마땅한 땅으로 지칭되었던
시돈과 두로가 바로 페니키아에 속하는 지역이다.
페니키아인들은 공통적으로 하나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오직 무역과 영리, 즉 돈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무역을 위한 말, 알파벳을 만들었다.
말과 말씀은 원래 진리를 전해주기 위한 것이었는데 장사를 위한 말을 만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구원받는 사람과 구원받지 않는 사람이 구분되는 것이라면
그런 불공평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들의 불신앙을 정당화한다.
말씀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바다의 모래처럼 많으나
그 중 말씀을 받아들이는 일부의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말씀을 그 자체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담아 준 그릇,
로고스로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외형으로 이해하는 사람들.
말씀을 로고스로 받아들이게 되면 그것은 하라, 하지 마라의 법령이 된다.
법 아래의 인간은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됨으로써
죄인으로서의 정체성은 갖게 되나 법에 묶여 자유롭지 못한 영혼이 된다.
마지막으로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들 중에 그것을 레마,
즉 진리로 받아들인 극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진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이들은 성경의 어떤 말씀을 읽어도 거기서 하나의 의미, 그리스도를 보게 되며
진리 속에서 자유를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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