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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열왕기하

남 유다가 아합의 길을 가다

by 운석57 2024. 7. 8.

2024.07.08(월) 큐티: 열왕기하 8:16-29

 

<묵상하기>

 

*남 유다가 아합의 길을 가다*

아합의 아들 여호람
(요람) 제 5년에 
남유다는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되었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왕의
이름이 모두
여호람이었다.

그래서 혼돈을 피하려,
북 이스라엘 왕의 
이름을 요람이라
기록하였다.

성경 기자는 이 때
남 유다에 왕이
두 명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하였다.

여호사밧 왕과
여호람 왕.

이는 여호사밧이 아들
여호람에게 왕위에
물려주고 섭정을
하였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여호람은 아버지
여호사밧과 5-7 년간
공동으로 통치하였고,
이후 8 년간 단독으로
통치하였다.

여호사밧이 생전에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준
이유는 북 이스라엘과
함께 아람과의 전쟁에
참전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왕위에서 물러난
이후 여호사밧은 전쟁에 
참전하는 것 외에도 자주
사마리아를 방문하곤 
하였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여호사밧이 예루살렘의 
경건함에서 벗어나, 
사마리아의 자유와 
향락을 즐긴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이것이 히스기야 왕 
다음으로 선했던 
것으로 알려진
여호사밧 왕의 
숨겨진 이면이다.

여호사밧이 
북이스라엘과
우의가 돈독했던
이유는 아합의 딸 
아딜랴를 며느리로
삼았기 때문이다.

즉 여호람의 아내가
아합의 딸 아딜랴였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아합의 아들 여호람과
같은 이름으로 지었다.

손자의 이름 역시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와 같은
이름으로 지었다.

열왕기하 저자는
여호사밧을 경건한
왕으로 기록하였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경건함과 아합스러움이 
공존했던 복잡한 인물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여호사밧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여호람은 다윗의
길을 가지 않고,
아합의 길을 갔다.

성경은 그가 그렇게
된 것은 아합의 딸인
아내 아딜랴 때문이라고 
강조하였다.

즉 아딜랴의 영향을
받아 여호람은 왕궁에서
바알을 섬겼던 것 같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유다 왕국의 등불을
끄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다윗과
하신 약속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심판을
하시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여호람의 악함에 대한
심판은 에돔과 립나의
반란으로 나타났다.

다윗이 에돔을 
점령하고 수비대를
둔 이래로 에돔은
유다의 속국이 되었다.

립나는 그 보다 더
오래 전, 여호수아 때
정복한 나라이다.

이러한 두 나라가
유다에 대해 반기를
든 것이다.

두 나라가 독립을
하는 경우, 유다의
경제적 손실은
매우 커지게 된다.

그래서 여호람은 
병거를 거느리고
에돔을 공격하였으나,
크게 패배하였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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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람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다.

아하시야는 그의
어머니 아딜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유다를
아합의 길로
통치하였다.

아하시야는
북 이스라엘과
매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래서 삼촌인 
북이스라엘의 왕
여호람과 함께 
아람과의 전쟁에
참전하려고 길르앗
라못으로 갔다.

그 전쟁에서 
북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이 
부상을 입게 된다.

여호람은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이스르엘에 머물렀다.

그리고 유다 왕 
아하시야는
여호람 왕을
만나기 위해
자주 이스르엘로
내려갔다.

 

 

<기도하기>

 

주님.

두 여호람은 모두
길을 잃었습니다.

악한 부모를 둔
여호람도, 선한
아버지를 둔 
여호람도 모두
길을 잃었습니다.

자신의 발은 자신이 
꼭 붙잡고 있어야
함을 봅니다.

부모가 잡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로 악한 길로
가려고 하는 발을 
붙잡아서 주님이 
이끄시는 선한 길을 
향하게 하소서.

성령으로 저희 의지를
복돋아 주시고, 지혜로
저희의 발 앞을 비춰주소서.

잘 못된 길을 분별하게
하시고 돌이키게
하소서.

너무 멀리 갔더라도, 
돌이키는 그 때가
가장 이른 때라는
것을 기억하게 하소서.

아멘!

 

 

* 두란노 출판사 발행 생명의 삶 본문 묵상을 올리는 블로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