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31(토) 큐티: 마태복음 8:23-34
<묵상하기>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경제 논리*
오늘 본문은 폭풍치는 바다 위,
그리고 무덤가,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두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자연의 맹위 (폭풍)와 영적인 공포(귀신)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조명하는 것은 폭풍이나
귀신 그 자체가 아니다.
그것을 잠재우신 예수님을 대하는 사람들의
기이한 반응이다.
사람들은 예수의 능력에 감탄하지만, 동시에
그 압도적인 권위 앞에서 뒷걸음질 친다.
1. 믿음은 동행하는 평안함
제자들은 배가 침몰할 위기에서 우리가 죽게
되었으니 구원하소서 하고 외쳤다.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 같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셨다.
그들이 예수님이 배에 함께 계시다는 사실보다,
눈앞의 파도를 더 크게 보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셨다는
사실이다.
폭풍 속에서의 단잠은 무책임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의
표현이다.
제자들의 잘못된 점은 폭풍을 없애 달라고
예수님을 깨운 것이 아니다.
예수님과 함께 한다면 폭풍 속에서도
안전하다는 사실을 잊은 데 있다.
믿음은 내 인생의 파도를 즉시 제거하는
능력이 아니다.
파도가 치든, 아니면 잔잔하든, 내 배의
선장이 누구인지 기억하며 폭풍 속에서
함께 잠들 수 있는 신뢰감이다.
기적은 폭풍이 멈춘 것이지만, 믿음의
본질은 폭풍 중에도 평안한 것이다.
2. 귀신도 아는 예수
가라사 지방의 귀신 들린 자들은 예수를
보자마자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르며
두려워 떨었다.
제자들은 방금 전 바다 위에서 "이 분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하며 의문을 가졌던 예수님의
정체를, 귀신들은 단번에 알아봤다.
이것은 영적인 세계의 씁쓸한 현실이다.
악한 영들은 예수의 권위를 정확히
알고 두려워한다.
반면, 구원받아야 할 인간들은 의심하거나,
거부하거나, 무지하다.
"우리를 돼지 떼에 들여보내 주소서"라고 말한
귀신들의 간구는 예수의 허락 없이는 악조차도
활동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세상의 악이 아무리 강력해
보여도, 결국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는
제한된 존재임을 폭로한다.
3. 돼지 2 천 마리와 예수님 한 분
이 본문의 가장 충격적인 결말은 마을
사람들의 반응이다.
귀신 들린 자가 온전해졌다.
한 영혼이 지옥 같은 고통에서 해방된
기적적인 순간이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가 그 지방에서
떠나기를 간구하였다.
이유는 명백하다.
돼지 떼가 몰살당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한 인간의 회복보다 자신들의
재산 피해가 더 피부에 와 닿았다.
예수님은 영혼을 구원하시지만, 때로는
그 과정에서 우리의 물질적 손해나
기득권의 상실을 요구하신다.
마을 사람들은 계산기를 두드렸다.
"이 예수를 계속 뒀다가는 남은
재산도 거덜 나겠다!"
이것은 현대 사회의 서늘한
자화상이기도 하다.
우리는 예수를 환영한다고 말하지만,
내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순간
예수님을 정중히 거절한다.
영혼의 가치보다 돼지의 시세가 더 중요한 사회,
그곳이 바로 예수님을 쫒아낸 가다라 (거라사)
마을이자,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기도하기>
주님.
인생의 배가 파도가 흔들릴 때마다,
주님이 함께 계시다는 사실보다
눈앞의 높은 파도를 더 크게 보며
두려워하는 저희 작은 믿음을
고백합니다.
폭풍 속에서도 주님 곁에 웅크려
잠들 수 있는 믿음을 갖게 하소서.
가라사 언덕에서 일어난 그 서늘한
거래를 기억합니다.
한 영혼의 회복보다 잃어버린 돼지
떼를 아까워하며 주님을 정중히
밀어냈던 그들의 계산법이 저희
안에도 있음을 봅니다.
내 삶의 소유가 바다로 빠져 사라진다
해도, 주님 한 분을 얻는 것이 가장 큰
이득임을 아는 거룩한 셈법을
가르쳐 주소서.
그리하여 제 삶의 영토에서 주님을 떠나
가시게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소서.
아멘!

* 두란노 출판사 발행 생명의 삶 본문 묵상을 올리는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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