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2(월) 큐티: 마태복음 9:14-26
<묵상하기>
*옷 자락 끝에서 구원을 훔치다*
오늘 본문은 새로움과 옛것의 충돌 현장이라
할 수 있다.
요한의 제자들은 왜 금식하지 않느냐고 묻고,
혈루증 앓는 여인은 아무도 몰래 예수님의
옷자락를 만지며, 한 관리는 죽은 딸을
살려 달라고 요청한다.
이 복잡한 에피소드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바로 생명의 폭발력이다.
예수님의 새 포도주는 낡은 종교의 가죽 부대를
찢고, 죽음이라는 절망을 찢었다.
1. 금식보다 강력한 축제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신앙은 금식과 슬픔의
엄숙한 의식이었다.
그들은 예수의 제자들이 먹고 마시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그들을 더욱
놀라게 한다.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기독교의 본질은 금욕적인 수행이나 우울한 경
건이 아니라, 신랑 되신 예수와 함께하는 기쁨의
축제이다.
신랑이 왔는데 금식하는 것은 경건이 아니라
무례이다.
예수님은 신랑을 십자가에서 빼앗길 날에는
금식하게 될 것이나, 지금은 잔치할 때라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낡은 옷, 유대교의 형식주의에
새 천 조각, 복음을 붙이지 말라고 하셨다.
복음은 낡은 종교 시스템을 수선하는
리폼이 아니다.
복음은 아예 그 시스템을 새로 설정하는
새 포도주이다.
우리의 신앙 생활이 메마르고 딱딱한 낡은 가죽
부대가 되어, 예수라는 생동감 넘치는 새 포도주를
감당하지 못하고 터져버린 것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2. 뒷모습을 훔친 믿음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에게 예수는 마지막
동아줄이었다.
그녀는 군중 틈을 파고들어 예수의 뒤로 가서
옷자락을 만졌다.
정면으로 나설 수 없는 수치심과 부정함 속에서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의 믿음은 신학적인 지식이 아니다.
만지면 낫겠다는 원초적이고 절박한 접촉의
갈망이었다.
예수님은 수많은 인파의 밀침 속에서도, 믿음으로
자신을 만진 그 미세한 전류를 감지하셨다.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하신
이 선언은 단순히 병이 나았다는 말이 아니다.
12년간 사회적으로 죽은 존재였던 그녀를
다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려내신 선언이다.
예수님의 옷자락은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흐르는 통로였다.
우리가 예배나 기도 중에 습관적으로 주님을
스치는 것이 아니라, 이 여인처럼 절박하게
접촉하고자 할 때 능력은 흘러나오게 된다.
3. 죽음을 잠으로 바꾸는 권세
관리의 딸이 죽었다.
피리 부는 자들과 곡하는 자들이 가득한
장례식장은 죽음의 권세가 지배하는
곳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선포하신다.
사람들은 비웃었다.
그들의 상식에서 죽음은 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의 주관자이신 예수님 앞에서 죽음은
단지 깨워야 할 잠에 불과했다.
예수님은 비웃는 무리를 다 내보내신 후에야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기적은 냉소와 불신이 제거된 공간에서 일어난다.
죽은 자의 손을 잡고 일으키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장차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사망 권세를 깨뜨리실
예고편이다.
세상은 끝이라고 말하며 장례를 준비할 때,
믿음은 예수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 즉
일어나라는 음성을 기다리는 것이다.
<기도하기>
주님.
저희 신앙도 딱딱하게 굳어버린 낡은
가죽 부대가 되어버렸습니다.
터질 듯한 생명력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을, 제 좁은 생각과 낡은 부대에
가두지 않게 하소서.
12년의 고통 속에서 주님의 뒤로 다가가
옷자락을 몰래 만졌던 그 여인의 간절한
손길을 배웁니다.
수많은 인파 속에 묻혀 그저 주님을 스쳐
지나가는 구경꾼이 아니라, 믿음의 손을
뻗어 주님의 능력을 끌어내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세상이 이제 끝났다며 비웃는 절망의 순간에도,
잔다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신뢰하며
죽음 같은 현실 속에서도 주님 손 잡고
일어나게 하소서.
아멘!

* 두란노 출판사 발행 생명의 삶 본문 묵상을 올리는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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