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3(화) 큐티: 마태복음 9:27-38
<묵상하기>
*긍휼은 감정이 아니고 고통이다*
오늘 본문은 본다는 것과 말한다는 것, 그리고
느낀다는 것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담고 있다.
육체적으로 눈먼 자들은 영적으로 예수를
가장 먼저 알아보았고, 말 못 하는 자는
입이 열려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러나 정작 모든 것을 보고 말할 수 있었던
바리새인들은 영적 맹인이 되어 예수님이
하신 일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다.
이 극적인 대비 끝에 예수님은 무리를 보며
불쌍히 여기시는 목자의 심정을 토해내셨다.
1. 맹인들의 추격전
두 맹인이 예수를 마치 추격하듯 따라오며
소리를 질렀다.
"다윗의 자손이여!"
그들은 앞을 볼 수 없었지만, 예수의 정체성을
가장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다.
눈 뜬 자들이 예수를 배척할 때, 눈먼 자들은
예수님을 추격하였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을
믿는지 물으셨다.
이는 단순히 그들의 믿음을 확인하신 것이 아니다.
그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믿음과 주파수를
맞추는 작업을 하신 것이다.
그들은 주저함 없이 "주여 그러하오이다"
대답하였다.
이 짧은 대답은 맹목적인 긍정이 아니라, 자신의
전 존재를 건 확신이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 예수님의 선언은
믿음이 일종의 청구서임을 보여주셨다.
믿음의 분량만큼 현실이 창조된다.
세상은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 말하지만, 맹인들은
믿는 것이 보는 것임을 증명했다.
영적인 눈이 떠지면 현실의 눈은 자연스럽게 열린다.
2. 말의 주권을 되찾다
귀신 들려 말 못 하는 자가 치유되자,
말문이 터졌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귀신이 인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소통, 즉 말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악한 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고
진리를 말하는 입을 닫게 만든다.
반면, 예수는 닫힌 입을 열어 존재의 목적을
회복시키신다.
그러나 이 기적을 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하였다.
그들은 눈도 멀쩡하고 입도 열려 있었지만,
그 입으로 가장 악한 신성모독을 뱉어냈다.
육체적으로 말을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지만,
영혼의 독설가는 재앙이다.
예수님은 말 못 하는 자의 혀를 풀어주셨지만,
삐뚤어진 말을 하는 종교인들의 마음은 고치지
않으셨다.
그들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치유는 단순히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말을 하는 것이다.
3. 찢어지는 마음
오늘 본문의 하일라이트는 예수님이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장면이다.
여기서 불쌍히 여기다로 번역된
"스플랑크니조마이"는 헬라어 원어로
창자가 끊어질 듯한 고통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목자 없이 방황하며 기진한 군중을 보며
단순한 연민이 아닌,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아픔을
느끼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다고 탄식하셨다.
왜 일꾼이 적을까?
능력 있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예수의
마음으로 세상을 아파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지식이 많고 능력이 좋은 리더는 많지만, 영혼을
보며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느끼는 진짜 목자는
드물다.
예수님의 기도 요청은 명확하다.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이것은 그냥 일손을 구하라는 뜻이 아니다.
예수의 심장을 이식받아, 이 병든 세상 속으로
뛰어들 영적 동지를 찾으시는 절규에 가깝다.
<기도하기>
주님.
세상의 헛된 것들은 쫓느라, 바로 곁에
계신 주님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두 맹인처럼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외치며
주님을 맹렬히 추격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주님의 긍휼을 저희에게도 부어주소서.
목자 잃은 양 떼처럼 방황하는 시대를 바라보며
내장이 끊어질 듯 아파하게 하소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서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던 메마른 가슴을 고백합니다.
저희가 서 있는 그 곳에서 주님의 심장을
가진 작은 일꾼이 되어 살게 하소서.
아멘!

* 두란노 출판사 발행 생명의 삶 본문 묵상을 올리는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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