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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마태복음

의심과 권태 사이

by 운석57 2026. 2. 7.

2026.02.07(토) 큐티: 마태복음 11:1-19

 

<묵상하기>

 

*의심과 권태 사이*

오늘 본문은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인 세례 요한의 
흔들림으로 시작하였다. 

광야에서 사자후를 토하던 그가 
감옥의 어둠 속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는, 영적 불감증에 걸린 
세대가 앉아 있다. 

의심하는 영웅과 무관심한 군중, 
이 두 가지 풍경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과 너무도 
닮아 있다.

1. 영웅도 의심한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에 
소개한 장본인이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외쳤던 확신의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차가운 감옥에 갇혀
 제자들을 보내 묻는다.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

이 질문은 배신이 아니라, 처절한 
현실 인식의 비명이다. 

요한이 기대했던 메시아는 불 도끼를 
들고 악인들을 심판하며 로마를 
뒤엎는 강력한 왕이었다. 

그런데 예수는 죄인들과 밥을 먹고, 
병자들을 고치며 너무나 조용히, 
그리고 약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자신은 감옥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예수는 구출할 기미조차 없다.

예수님은 요한을 책망하지 않으셨다. 

대신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고 답하셨다. 

이는 세례 요한이 생각하는 방식의 
정치적 혁명은 아니지만, 예수님이 
일하시는 방식, 즉 생명의 회복으로 
하나님 나라는 확실히 오고 있다는 
위로이자 확증이다. 

요한의 위대함은 흔들리지 않음이 
아니라, 흔들리는 순간에도 질문의 
대상을 예수께로 고정했다는 점에 
있다. 

의심을 들고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 
믿음이다.

2.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

예수님은 흔들리는 요한을 변호하셨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 

이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요한의
 독보적인 위치를 인정하신 것이다. 

그러나 곧바로 충격적인 반전이 이어진다.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이것은 요한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전환을 선포하신 것이다. 

요한은 문밖에서 서성거리며 문을 가리키는 
문지기였다. 

그러나 예수 이후의 성도들은 예수와 함께 
문 안으로 들어가 그 실체를 누리는 자들이다.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한, 그리고 성령을 
자신 안에  모시고 사는 신약의 성도들은 
구약의 그 어떤 믿음의 영웅보다 영적으로 
더 위대한 위치에 있다. 

이것은 우리의 능력이 뛰어남이 아니라, 
우리가 서 있는 은혜의 자리가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 역시 세례 요한도 보지 
못한 십자가의 완성을 보고 사는 특권층이다.

3. 춤추지도, 울지도 않는 권태 세대

예수님은 이 세대를 장터에 앉은 
아이들에 비유하신다. 

결혼식 놀이를 하며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장례식 놀이를 하며
애곡하여도 울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심각한 
영적 무감각이자 냉소주의이다. 

요한이 금식하며 회개를 외치면 
귀신 들렸다고 비난하고, 예수가 
먹고 마시며 축제를 열면 먹기를 
탐하는 자라고 비난한다.

이 세대는 진리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과 기분으로 
판단한다. 

어떤 방식으로 다가와도 핑계를 
대며 거절한다. 

감동할 줄 모르고, 아파할 줄 
모르는 마음. 

 무서운 영적 질병 상태이다. 

세상이 아무리 냉소해도, 춤출 때 춤추고 
울 때 우는, 반응하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전진한다.

오늘 말씀을 요약하면, 감옥 같은 현실에서 
의심이 들 때도 질문을 멈추지 말고, 
냉소적인 세상 속에서도 복음의 피리 
소리에 반응하여 춤추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도하기>

 

주님,

감옥 같은 현실은 변하지 않고, 
주님의 응답은 너무 더딘 것만 같아
"정말 주님이 맞습니까?"라고 묻고 
싶은 저희의 연약한 의심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의심의 끝에서 등을 돌리지 
않고, 다시 주님께 질문을 던지는 
믿음을 주소서.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해도 울지 않는 이 시대의 
차가운 냉소와 무관심이 저희
마음을 물들이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기쁨에 함께 춤추고, 
주님의 아픔에 함께 눈물 흘리는
심장을 회복시켜 주소서.

아멘!

 

* 두란노 출판사 발행 생명의 삶 본문 묵상을 올리는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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