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8(일) 큐티: 마태복음 11:20-30
<묵상하기>
*세상에서 가장 쉬운 멍에*
오늘 본문에는 서늘한 저주와
따뜻한 초대가 공존하고 있다.
앞 부분에서 예수님은 기적을 가장
많이 베푼 도시들을 향해 맹렬히
화를 내시고, 뒷 부분에서는 지친
영혼들을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르신다.
"화 있을진저"와 "내게로 오라"
사이의 간격!
이 극적인 대비 속에 사람들의
병든 영성과 치유의 해법이
숨겨져 있다.
1. 익숙함의 저주
예수님은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을 향해 저주에
가까운 책망을 쏟아내셨다.
충격적인 것은 이곳들이 예수님의
권능(기적) 가장 많이 목격하고 체험한
성지였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이 기적을
보여주시면 정말 잘 믿을 텐데 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기적의 경험이 곧
회개로 이어지는 것이 아님을 폭로하였다.
그들은 기적을 유흥거리로 소비했을 뿐,
삶을 바꾸는 회개로 반응하지 않았다.
은혜가 일상이 되면 감사가 사라지고
권리가 된다.
기적이 넘치는 현장에 있었지만 예수를
구경거리로만 여겼던 그들의 모습은,
수많은 설교와 은혜의 홍수 속에
살면서도 정작 삶은 전혀 변화되지
않는 우리의 영적 비만상태를 고발한다.
가장 무서운 심판은 고통이 아니라,
은혜에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2. 똑똑한 바보들과 지혜로운 어린아이들
신앙의 세계에는 역설적인 진입 장벽이 있다.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자에게는
문이 닫히고, 나는 모릅니다라고
고백하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에게는
문이 열린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지능이나 학력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복잡한 신학 논쟁보다 단순한 신뢰가
하나님 마음에 더 깊이 닿는다.
복음은 분석하는 자가 아니라, 엄마 품에
안기듯 주님께 안기는 자에게만
그 비밀을 보여주신다.
3. "쉼"은 주인의 멍에를 매는 것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이 구절은 기독교 최고의 명대사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안하는 쉼의 방식이
독특하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쉼을 주신다면서 멍에를 메라니,
모순처럼 들린다.
그러나 당시 팔레스타인의 농경
문화를 이해하면 이는 최고의
복음이 된다.
소 두 마리가 멍에를 맬 때, 경험
많은 어미 소와 힘없는 새끼 소가
함께 멘다.
힘은 어미 소가 다 쓰고, 새끼 소는
그저 옆에서 보조를 맞추며 걷는
법을 배운다.
예수님의 제안은 짐을 없애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의 파트너가 되어
그 짐을 대신 져주겠다는 뜻이다.
세상살이가 힘든 이유는 멍에 자체가
무거워서가 아니라, 내가 혼자 그
멍에를 끌고 가려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안식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주도권을
예수님께 넘기고 그분과 보폭을
맞추는 것이다.
예수님의 멍에는 내 자아가 만든
멍에보다 훨씬 가볍다.
쉼은 노동의 중단이 아니라,
주인의 교체에서 온다.
<기도하기>
주님.
수많은 은혜와 기적 같은 일상을
누리면서도 감사를 잊었습니다.
수 많은 은혜에 익숙해져 마음이
무뎌졌음을 회개합니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혼자 짊어지고
힘겨워하며 살아왔습니다.
이제 내 자아와 욕심으로 만든
무거운 멍에를 내려놓고, 주님이
내미시는 온유하고 겸손한 멍에를
메게 하소서.
모든 무게를 감당해 주시는 주님
곁에서 떨어지지 않게 도우소서.
진정한 쉼과 평안을
배우게 하소서.
아멘!

* 두란노 출판사 발행 생명의 삶 본문 묵상을 올리는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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