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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묵상

믿음이 작은 것은 괜찮습니다

by 운석57 2019. 1. 2.

 말씀 강해

 

제목: 믿음이 작다고 한탄하지 말라

 

말씀: 마태복음 17장 14~20절

 

"14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9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성도들 중에도 자기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열등감, 좌절감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을 경험하는 경우입니다.

 

목사님도 설교에 대한 열등감으로 오래 동안 고통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고린도전서 126~30절 말씀으로 구해주셨다고 합니다.

 

어느날 하나님이 약한자를 택하여 강한자를 부끄럽게 하신다는 말씀을 읽는데

 

그 말씀이 강하게 믿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열등감이 해결된 것을 느꼈습니다.

 

아직도 열등감이나 좌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안에 믿음이 있지만

 

그 믿음의 수준이 아직 열등감을 해결할 만한 정도가 아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변화되는 것이라 합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았으므로

 

실제 생활에서도 구원을 누리려면 자기 자신을 묵상하고 살면 안된다고 합니다.

 

구원을 받았는데 여전히 자신의 열등감과 좌절감을 묵상하는 사람은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 간질로 고생하는 자의 아버지를 보시고

 

예수님은 그가 믿음이 없음을 한눈에 알아보셨습니다.

 

그래서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만약 믿음 있었다면 아들을 예수님에게 바로 데려왔겠지요.

 

믿음이 없으므로 혼자 와서 제자들을 탓하며 탄식만 늘어놓았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왜 자신들은 고치지 못했는가를 예수님께 여쭤봅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작은 까닭이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믿음이 작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능력이 충만했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불과 열흘 만에

 

성령 충만으로 변화되어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며 믿음에 담대해집니다.

 

믿음이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면 믿음이 작은 것은 괜찮다고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니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기뻐하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그 믿음 속에 생명이 있는냐 입니다.

 

예수님이 겨자씨라는 표현을 쓰신 것은 작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신 것이 아닙니다.

 

만약 작은 것을 표현하고자 하셨으면 모래알, 티끌 이런 표현을 쓰셨을 것이라 합니다.

 

겨자씨를 인용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생명력을 의미한 것이지요.

 

겨자씨 만한 믿음이라도 생명이 있으면 그 믿음은 계속 자라게 됩니다.

 

그러면 생명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생명이 있는 믿음은 예수님이 있는 믿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계속 바라보는 믿음이 있으면 그 믿음이 계속 자라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현재 처지와 조건에는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생명 그 자체이므로

 

엄청나게 자라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성경에 나오는 두 부자의 예화로 말씀을 마쳤습니다.

 

부자 관원과 삭개오 이야기입니다.

 

부자 관원은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다 버리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따를 수 없어 그냥 돌아갑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예수님 그 자체를 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에게 집중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라고 합니다.

 

 

기도

 

오늘 말씀을 통해 믿음이 작다고 부끄러워 하는

 

저를 위로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위로에 감격하여

 

자라는 것을 멈춘 사람이 되지 않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은 겨자씨만한 믿음을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말씀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안에 있는 신앙의 잠재력을 분출시킬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그냥 잠재력으로 끝나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