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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갈라디아서

갈라디아서 묵상: 전편

by 운석57 2019. 5. 8.

갈라디아서 큐티를 끝내고 나니

매일 주어지는 본문에 대한

깊이 있는 묵상은 일어났으나

갈라디아서의 전체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지어 다시 읽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전체 묵상을 시도하였다.

 

갈라디아서는 6장에 불과하므로

짧은 성경이라 할 수 있으나

이것은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이므로 편지로서는

결코 짧지 않은 글임을 알 수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은 것도 아니고

딱딱하기만 한 바울의 편지를

갈라디아서 지역의 교인들은

마치 가뭄에 단물을 만난 듯 서로 돌려가며

읽고 또 읽었을 것을 상상하니

그들의 영적 갈급함이 부럽기도 하다.

 

너무 풍요로우면 고마움을 잊어버리고

갈급함도 상실하게 된다.

지금 우리가 성경을 대하는 태도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갈라디아서를 처음으로

끝까지 읽어 보았으나

갈급한 마음으로 읽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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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편지가 그러하듯

편지의 서론에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인사말을 전한다.

 

그런데 그 인사말에도 모두 건강하고

살기는 나아졌으며 가내 안녕하냐는

인사는 일절 없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있기만을

빌어 주고는 끝이다

 

그리고는 서론에 바로

갈라디아 교회들에 대해

자신이 걱정하는 점을 이야기 한다.

누군가 교회 안에 거짓 복음을

퍼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바로잡고자 한다는

편지의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편지의 지면 중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정당성을

설명하고 있다.

아마도 갈라디아 교회들의 불순한 세력들은

거짓복음 뿐 아니라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

도전을 해왔던 것 같다.

 

그리고 갈라디아 교회들 안에서

거짓복음이 난무하게 된 것에는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 제기된 의문점이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잠깐 사도의 기준을 살펴보면

예수와 함께 사역을 하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았거나

또는 그의 부활을 직접 목격했어야 한다는 것이

사도에 대한 충족 조건이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이방인을 위한 사역자로

직접 부르심을 받았으며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은 후

그는 바로 아라비아 광야로 가서

그곳에서 삼년 동안 성령에 의해

말씀으로 양육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예수님의 핵심 사도들을 만나서

그가 양육 받은 말씀에 대해

확증하는 절차를 밟은 후 바로

이방인들에게 나아갔다고 설명한다.

 

즉 자신이 위에서 말한 사도직의 조건을

충족하였으므로 어느 누구도 사도로서의

자신의 권위를 의심할 수 없으며

따라서 자신이 전한 복음이

참 복음임을 강조한다.

 

이에 덧붙여 바울은 이방인 사역을 시작한 후

14년이 지나서 다시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한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을 다시 방문한 것은

바로 갈라디아서 교회 안에 팽배한 거짓복음,

즉 율법주의 때문이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음으로써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참 복음을 가르쳤다.

 

그러나 믿음에 덧붙여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거짓 복음,  율법주의가 슬며시

교회 안에 스며들었으며

많은 교인들이 이에 미혹되어 갈등이 조장되자

사도바울이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베드로 및 교회 지도자들을 만나 이에 대해

논의하였던 것이다.

 

베드로를 비롯한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참 복음임을 인증하였으며

바울을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이방인의

복음을 맡은 자로 인정하였다고 한다.

 

아울러 사도 바울은 자신만큼

율법을 위해 살았던 사람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 하였다.

그랬던 자신이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으로부터 율법주의를

철저하게 잘라내고

하나님을 향해 살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가 된다.

 

그리고 나는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으므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사는 것이라는 그 유명한 고백을 한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대속하시려

십자가에서 피 흘리셨다는 믿음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갈라디아서 교인들에게

가르친 참 복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