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8(월) 큐티: 욥기 9:11-24
<묵상하기>
욥은 하나님의 권능에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심판과
징계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는
분으로 인식하고 있다.
자신과의 친밀한 교제를
원하시는 분이라
여기지 않는다.
그가 하나님이 지나가셔도
자신은 보지도 깨닫지도
못하며, 자신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더라고 자신은
믿지 못한다고
고백하였기 때문이다
왜 욥은 하나님을 멀게
느끼게 되었을까?
그것은 하나님이
아무 이유 없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시고
숨쉴 틈도 없이 고통으로
자신을 채우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인식 속에서
하나님은 신실한
약속의 하나님에서
임의의 하나님, 즉
랜덤의 하나님으로
변화되었다.
욥은 자신의 고난에 함몰되어
하나님의 신실함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잊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것으로 만족하시지 않고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이유는
사람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이다.
욥은 그 사실도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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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삶에는
늘상 고난이 있기 마련이다.
고난이 있다는 점에서
사람은 동등하다.
즉 믿는 자의 삶에도
믿지 않는 자의 삶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고난들이 존재한다.
그런 맥락에서
고린도 전서 10: 13절의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하는 말씀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주신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다.
믿는 자에게도 모든 사람들이
감당하는 정도의 시험이
늘 있게 마련이나,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는
의미로 생각된다.
따라서 고난 중에 기억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며,
그 고난 가운데서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그 분과의 친밀하고
깊은 교제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욥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난받는 사람을
옆에서 바라보는 것과
그 고난 중에 있는 것은
너무도 다른 이야기다.
내가 욥의 신을 신는다면,
솔직히 욥과 같은 길을
가지 않을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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