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6(토) 큐티: 욥기 19:21-29
<묵상하기>
세상의 어떤 사람도
소망이 되지 못하는
그 때에, 욥은 단 하나의
소망을 깨닫는다.
그의 구속자.
예수님이 구속자로
오시기 아주 오래전,
동시대를 살았던
아브라함과 욥 모두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 구속자를 믿고,
바라고, 기다렸다.
욥은 이 구속자의 의미를
처음에는 중재자로 인식했다.
즉 자신이 죄가 없음에도
하나님으로부터 고난을
받게 되었으므로 이러한
자신의 상황을 하나님께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중재자를 구하였다.
이후 욥은 이 구속자를
증인으로 인식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
심판을 받을 때에
자신이 죄가 없음을
변호해줄 증인이
존재함을 주장하였다.
그러던 그가 이제
자신에게 구속자가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아니 분명히 알게 된 것이다.
중재자와 증인은 죄가
없음을 전해주는 분이시다.
그러나 구속자는 죄인의
죄를 대속하시는 분이시다.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아무리 무거운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그 죄를 속량해주시는
분이 구속자이시다.
욥은 적어도 이 순간에는
자신에게 구속자가
필요함을 고백하고,
그 구속자가 살아계셔서
이 땅위에 서실 것임을
선포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살이 다 썩은 후,
즉 죽은 후에라도 자신이
육신을 입고서, 구속자이신
하나님을 뵐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부활 신앙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속자는
구원자이신 동시에
심판자이심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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