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0(월) 큐티: 욥기 37:14-24
<묵상하기>
엘리후의 말 중에서
두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즉 "하고 싶은 말이라고
그분께 다 고하겠습니까?" 하는
말과 두번째는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어
우리는 전능하신 분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라는
말이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심은
사람과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이다.
깊은 교제를 나누려고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께 하고 싶은
말을 다 고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어떻게 교제를
나누겠는가?
또한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다 고하지 않고,
마음 속에만 담아둔다고
하나님이 그 말을
모르시겠는가?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에서
제사법을 가장 먼저
알려주시고 제사를
지내게 하심은 그들을
거룩하게 하기 위함이다.
사람은 아담의 후손으로
본질상 죄의 자식이므로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거룩해질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셔서
알려주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참 제사의
의미를 모르고 짐승들만
희생시키는 의식에만
매달리면서 죄에서 떠나지
않으므로 그리스도의
영 단번의 희생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다.
아들을 희생시켜서
거룩하게 하신 뜻은
우리를 구원하여
교제를 나누려 하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고하지 않는 것,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는 것, 그것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엘리후처럼 욥에게는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즉 저주도 마다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가려서
말하는 사람을 기뻐하시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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