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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누가복음

그 관에 손을 대시니

by 운석57 2022. 1. 25.

2022.01.25(화) 큐티: 누가복음 7:11-17

 

<묵상하기>

백부장의 종을 고치신 
예수님은 그 이후
나인성으로 가셨다.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다.

나인성에 이르러
제일 먼저 마주친 것은
장례 행렬이었다.

과부의 외아들을 
위한 장례였다.

나인성은 기쁨이란
뜻을 가졌다고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성에서
더 할수 없이 비통한 일과 
조우하게 된 것이다.

생명이신 예수님과
죽음이 마주치는
현장이었다.

예수님은 한 눈에 
상을 당한 여인의 
사정을 알아보셨다.

모든 소망이 사라진 자의
눈물을 보셨다. 

텅빈 눈에서 하염없이
흘러나오는 눈물.

그 여인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몰랐을 것이다.

물론 그녀도 예수님의 
소문은 들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들의 죽음으로 
그의 눈이 텅 비어서
아무 것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한 없는 연민을 담아
바라보시면서 "울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관을 멘 자들이 
아직 걸음을 멈추지도 
않았는데, 다가가셔서
관에 손을 대셨다.

그제서야 관을 멘 자들이
깜짝 놀라 멈춰섰다.

유대인이 관에 손을
대는 것은 금기이다.

부정한 일이므로..

그런데 랍비처럼 보이는
사람이 율법을 어기고
관에 손을 대니 모두 
놀라서 멈춘 것이다.

왜 예수님은 백부장의
종을 치료하시듯 
말씀으로만 하지 않으시고,
관에 손을 대셨을까?

죽음은 죄의 삯이다.

따라서 죽음을 물리치려면,
누군가 죄에 대한 삯을 
대신 지불해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이 죄의 삯을
대신 지불하시기 위해
그 관에 손을 대신 것이 아닐까?

속죄제를 드릴 때는 
속죄 양의 머리에
안수하여 그 양에게
자신의 죄를 전가한 후,
그 양을 제물로 바쳐
속죄를 받게 된다.

그것처럼 예수님이 
관에 자신의 손을 대어
죽은 사람의 죄를 
전가받음으로써,
죄의 삯을 대신
지불하신 것이 아닐까?

그리고 예수님은 
죽은 청년에게
"일어나라"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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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죽었던 자가
바로 일어나 앉고
말도 하였다.

죽었던 자가 
살아나더라도
그저 눈만 떴을 뿐,
한동안 누워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 바로 일어나
앉아 말을 하였다.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는
천천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즉시, 단번에 일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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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장의 종이나 
과부의 외아들이나
모두 자신들의 믿음으로
나음을 입거나 살아난 
것이 아니다. 

백부장의 종은 신실하고
믿음이 좋은 주인을 두었기
때문에 고침을 받았다.

그를 위한 중보자가
존재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오늘 살아난
청년에게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예수님이 그의 
죽음과 어머니의 눈물을
주목하여 보셨을 뿐이다.

그런데 구원이 일어났다.

오직 예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로 이루어졌다.

어쩌면 예수님은 자신을
쫒는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이
긍휼하심과 자비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보이기 원하셨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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