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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창세기

사라는 왜 귀히 여김을 받았을까?

by 운석57 2022. 9. 1.

2022.08.31(수) 큐티: 창세기 17:15-27

 

<묵상하기>

 

지금까지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부터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했으나, 그 자손이 사래가
낳은 자손이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사래는 그 자손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99세, 사래 89 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사라가 낳은 자식이 
약속의 자손이라 하셨다.

그리고 사래의 이름도
사라라고 바꿔주셨다.

사라는 많은 민족의
어머니라는 뜻이라고 한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몇 사람의 이름을
바꾸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야곱을 이스라엘로,
그리고 사울을 
바울로 바꾸셨다.

그러나 여인의 이름을
바꾸신 것은 사라가
유일하다고 한다.

성경에는 사라는 127세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여인이 세상을 떠난 
나이를 기록한 것도
사라가 유일하다고 한다.

그렇게 사라는 하나님께 
귀히 여김을 받은 여인이었다. 

그런데 사라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다지 
기억나는 것이 없다.

남편이 그녀를 누이라고
속여서 중혼을 할 위험에
처했다는 것, 남편에게
하갈을 첩으로 준 것, 
임신한 하갈을 핍박한 것,
하나님이 사라에게서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
말씀하셨을 때 웃었던 것
밖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사라는 선택되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긴다고 하셨다 (롬 9:15).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귀히 여길 자를 귀히 
여기실 것이다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은 제물의 문제가
아니라, 가인이 긍휼함을
받지 못할 삶을 살았기 
때문일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이 사라를
귀히 여기셨다면, 사라가
귀히 여김을 받을 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남편이 하나님의 
뜻이라면서, 편안히 살던 
하란에서 떠나자고 했을 때,
한 마디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즉시 떠났다.

가나안에 도착한 후, 이미
다른 족속이 그 땅을 차지하고
있어서, 그 땅을 유랑할 수 밖에 
없었을 때도 그녀가 남편에게 
불평을 했다는 기록이 없다.

그냥 순응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사라가 매우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여인이라 자신의 주관도 없이
남편의 의견에 그냥 따르기만
한 것이었을까?

교만해진 하갈을 핍박하고,
이삭을 낳은 후, 이스마엘이
어린 이삭을 괴롭히는 것을
보고는 이삭이 하나님의 기업을
이스마엘과 나눠 가질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한 것을 보면,
그녀는 결코 나약하거나
수동적인 여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어서 순종했던 것이다.

사라가 하갈을 남편에게
준 이유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 약속을 인간적인
생각으로 성취하려는 
실수를 범했지만... 

여하튼 하나님은 사라를
선택하셨고 그의 몸에서
나온 이삭을 언약의 
자손으로 세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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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모든 말씀을 마치시고
떠나시자, 아브라함은 할례를
위해 즉각적으로 움직였다.

할례를 받는다는 것이 
당시의 의료 조건이나
위생 상태를 보아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었음에도
그는 지체하지 않았다.

먼저 자신과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 그의 집에
있는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도록 하였다.

아브라함은 믿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때로 실족하기도 하였으나,
그러나 그가 걸어간 방향은
언제나 하나님께 순종하는 
방향이었다.

그리고 그 순종은
지체함이 없는
즉각적인 순종이었다.

그래서 그는 어제 보다
나은 오늘을,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의 신앙 여정을 
걸어서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에 이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