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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레위기

죄에 민감한 자가 속죄제를 드린다

by 운석57 2019. 8. 16.

2019. 08.16 큐티: 레위기 4: 22-35

 

 

<묵상>

 

속죄제는 일상생활에서
무의식적으로라도 지은 죄를
속죄하는 것이므로
누구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죄를 자각해야만

속죄제를 드리게

된다는 것이다.

어제는 제사장들과
전체 백성의 죄를
속죄하는 제사에 대해 말씀하셨고
오늘은 족장과 평민을 위한
속죄제를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지위에 따라
제물의 종류를 달리
하셨다.

족장은 숫염소
평민은 암염소나 어린양.

그래서 예수님을
흠 없는 어린양 이라
부르는 것인가 보다.

그런데 족장이나 평민의
속죄제의 경우는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르고
내장 기름을 태울 뿐이다.

즉 성소 휘장에 피를 뿌리지 않고
나머지 고기를 불에 태우지도 않는다.

왜 이런 차이를 두신 것일까?
생각해봤으나
그 의미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속죄 제물이 되셨다는 점이다

욥이 고난을 받기 전,
하나님이 욥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평가하신 배경에는
욥의 아들들이 모여
잔치나 축제를 즐긴 후에는
욥이 반드시 아들들을 불러
제사를 지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때 욥이 드린 제사가
속죄제에 해당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아들들이 잔치에서 먹고 마시는 가운데
무의식적으로 죄를 지었을 것이라

염려하여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욥의 행동을
신실한 것으로 보시고
기뻐하셨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예배가
이러해야 함을 깨닫는다.
어떤 날의 예배도 심상할 수 없다.

예배가 심상함은 우리의 죄에 대한
마음이 심상함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어제 읽은 잠언 14장 말씀에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긴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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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님.

죄를 자각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 또한
축복임을 깨닫습니다.

속죄제를 통한
회개가 가능하려면
먼저 죄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심상히 여기는 것에
타성이 생기게 되면
회개도 없고 속죄도 없는
인생이 될 줄로 생각합니다.

험난한 광야 생활 중에서
그 귀한 소와 염소를
속죄제를 드리기 위해
끌고 온 사람들은 모두
죄에 민감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온종일의 노역으로
곤비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돌아오지 않은
주인을 기다리는 종처럼
깨어 있으라고 하신 것은
우리 삶은 세상 속에 있어
죄에 무뎌질 수밖에 없으나
그래도 깨어서 죄에 민감하라는
말씀으로 묵상합니다.

죄를 자각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주님 앞에 엎드려
속죄의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

속죄의 눈물을 주님의 제단 앞에
쏟아 비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