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6(월) 큐티: 열왕기상 13:25-34
<묵상하기>
*의인과 한 무덤에 묻힌다고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사자와 나귀가 마치
상주처럼 시체 옆에
나란히 서 있다는
소문이 벧엘에 퍼졌다.
소문을 듣고 벧엘의
늙은 선지자는
남 유다에서 온
선지자가 죽은 것을
직감하였다.
그래서 나귀를 타고
시체가 있는 곳으로
가서 보니, 소문 대로
시체 곁에 사자와
나귀가 나란히
서 있었다.
남 유다에서 온
선지자의 죽음이
하나님의 섭리 임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늙은 선지자는 시체를
나귀에 싣고 벧엘로
돌아와 슬피 울며
장사를 지냈다.
그리고 시체를 자기의
묘실에 두었다.
장사를 마친 후, 늙은
선지자는 아들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자신이 죽은 후 남 유다에서
온 선지자 옆에 자신을
묻어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벧엘 제단
향한 그 선지자의
경고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
말하였다.
그러나 의인과
한 무덤에 묻힌다고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아들들에게
그렇게 유언을
남겼을 뿐, 남 유다에서
온 선지자처럼 이스라엘을
향하여 그들의 죄를
경고하지 않았다.
벧엘을 향한 하나님의
예언이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사실을 외쳐
선포하지도 않았다.
벧엘을 떠나 남 유다로
가지도 않았다.
세상과 타협하여 벧엘에
남았듯이, 여전히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도
세상과의 타협 속에
머물렀던 것이다.
그는 여전히, 그리고
끝내,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일상 속에서의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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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보암 또한 그런
사람이었다.
손이 마비되었다가
고침을 받았고,
자신의 눈 앞에서
제단이 둘로 갈라졌으며
재가 쏟아져 내렸는데도
그는 돌이키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 줄
알았으나, 진리를 붙잡는
대신 세상의 힘과 권력에
집착했다.
말씀을 붙잡으면, 말씀이
자신을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회개하지 않은
여로보암은
악한 길에서
떠나지 않았고,
오래지 않아 그의
집은 땅 위에서
끊어지게 되었다.
<기도하기>
주님.
누구나 잘못된 길에
서서 울고 슬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울고 슬퍼하는
것은 힘이 없습니다.
그 길에서 돌이킬 수
있어야 힘이 됩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믿는 사람에게 주신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저희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돌이키게 하소서.
의인과 함께 무덤에
묻힌다고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소서.
아멘!
* 두란노 출판사 발행 생명의 삶 본문 묵상을 올리는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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